99세 아르바이트
그녀는 내가 아는 최고령 아르바이트생이다. 1920년생, 99세 나이로 식당에서 일을 도우신다. 식당 주인 할머니는 걷는 게 힘들어 요리만 하신다. 바닥을 닦고, 수저를 정리하고, 채소를 다듬고 할머니가 하는 일은 대중이 없다. 주인 할머니를 대신해 음식 재료도 직접 사 오신다.
필동엔 큰 시장이 없기 때문에 충무로 5가 중부시장까지 다니신다. 젊은 걸음으로도 왕복 40분이다. 가끔 늘어진 장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땅에 닿을 듯 걸어오시는 할머니와 만날 때가 있다. 쳐진 장바구니와 당신의 몸이 비슷하게 닮았다. 구부정한 허리 때문에 햇빛이 유독 할머니 등에만 더 내리쬐는 듯하다.
아픈 70대 사위와 딸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계신다. 집에 있기가 답답해 자주 밖으로 나오신단다. 집 근처 영광 식당에서 일을 돕는 것이 즐거우시단다. 식사도 잘 하시고 늘 웃으셔서 얼굴이 하회탈 같다. 여름엔 뒷마당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곤 하신다. 아이스크림이라도 건넬 때면 아이처럼 웃으신다. 웃을 때 보이는 할머니의 틀니가 옥수수 알갱이 같다.
영하 13도까지 내려간 오늘 아침에도 그분을 만났다. 여전히 두 손엔 긴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다가가 한쪽 바구니를 들어 드렸더니 부끄러워하신다. 할머니의 목이 휑하다. 속에 열이 많아 목도리를 하지 않는단다. 손가락보다 긴 장갑을 낀 할머니의 손이 거인의 것처럼 어색하다.
김유리 작가;
20년 넘게 편집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 중 충무로에서만 10년이다.
내게 필동은 이방인처럼 단순히 왔다만 가는 곳이 아니다.
디자인기획사를 운영하면서 필동에 작은 공간(갤러리 꽃피다)을 하나 만들었다.
필동 주민분들과 사진으로 소통하는 곳이다.
현재는 충무로 필동 주민들과 세운상가 일대를 사진에 담고 있다.
온전히 필동 주민이 되는 날 그분들과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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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갤러리에 잠깐 들르셨네요.
갤러리에는 조명환 작가의 ‘가리왕산, 진혼’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가리왕산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눴습니다. 올림픽 경기장을 위해 잘려 나간 많은 나무들을 안타까워하면서...
관람후 할머니는 식당 뒷마무리 때문에 다시 영광식당으로 바삐 가십니다.
드디어 시작하시는 군요. 열렬히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