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33
십여 년 전 이맘때,
나는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과 아주 흡사한 모습을 북녘땅에서 만났다.
황톳길 너머에는 어떤 동네가 있을까?
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 어릴 적 고향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 남아있음이 고마웠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황톳길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들을 보면서
유년시절 숨가쁘게 오르내렸던 내 작은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오가다 보면 평화통일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적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가는 모든 길이 막혀버렸다.
막힌 길의 끝에는 서로 적대하는 증오만 남았다.
길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조국 앞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사진 한 장을 놓고 기도한다.
그 길을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
가을날, 나뭇그늘에 앉아 아주 오랫동안 유년의 시절을 추억하며
그 길을 보게 하시고,
될 수만 있다면 황톳길을 걸어 그 너머에 있는 동네도 볼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