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경주 백률사 (2)

 
지극하다는 것, 절실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극한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누군가의 평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나의 온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한 믿음,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지극하다는 것, 절실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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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백률사에 가면 그런 절실함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신라의 불교 공인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한 이차돈(異次頓)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차돈은 ‘버리기 어려운 모든 것들 중에 목숨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내어놓는다. 

파릇파릇한 스물두 살 청춘이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그의 고뇌와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까. 

그럼에도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저녁에 죽어 아침에 큰 가르침이 행해질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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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殉敎)’라는 것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이차돈의 순교 덕분에 신라는 불교 공인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신라의 불교 유산들도 그의 순교가 없었다면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그의 순교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석양이 그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샘물이 갑자기 말라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어오르고, 곧은 나무가 부러지니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 …… 동료들은 서로 마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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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묘사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차돈의 순교는 분명 그를 아꼈던 이들에게는 물론 기득권 세력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의 희생은 숭고하고 절실한 마음 그 자체였다. 

그의 희생 이후에 ‘이 절에서 예를 올리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누리고, 사람마다 도를 행하면 불교의 이로움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지극한 마음이 불러온 기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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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경주 사면석불 앞에는 “축! OO고시 합격 OOO” 혹은 “축! XX대학 합격 XXX” 라고 쓰인 현수막들이 가득하다. 

석불 주변에 즐비하게 걸린 현수막들은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풍경이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가득한 이 깃발들은 한편으로는 지극하고 절실한 마음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 지극하고 절실했던 마음들을 보며 조용히 되뇌어본다.
 내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당신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고…….

 

 


한선영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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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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