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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백률사 (1)

 

지난주에는 경주에 다시 다녀왔다. 수학여행의 잔상 속에 오래도록 갇혀있던 경주였는데 요즘은 갈 때마다 매번 새롭고, 볼 때마다 다시 보인다. 남산 구석구석에 수많은 불상과 석탑이 숨겨져 있듯이 경주는 도시 곳곳에 가볼 만한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경주 소금강산에 있는 백률사도 그런 보물들 중의 하나이다. 백률사는 규모는 작지만 신라의 불교 공인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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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가 찬란했던 신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라의 불교 공인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불교를 받아들인 것도 고구려(372년)와 백제(384년) 보다 150여 년이나 뒤진 527(법흥왕 14)년의 일이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의 순교가 있은 후의 일이다. 이차돈은 성은 박씨, 자는 염촉(厭?)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그의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치고 땅이 진동하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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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의 범종에 새겨진 문양은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차돈은 ‘자신이 죽어 큰 가르침이 행해진다면 부처님의 해(佛日)가 떠오를 것’이라며 순교를 자청하였고, 왕과 신하들이 모두 애통해하는 가운데 그의 처형이 행해진다. 삶과 신념이라는 극단의 갈림길에 선택한 그의 순교는 절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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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또한 백률사의 사면불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경덕왕이 이곳을 지날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사면에 부처가 새겨진 바위가 나왔다. 땅속에서 솟아난 백률사의 사면불은 문경 대승사의 ‘하늘에서 떨어진’ 사면불과는 반대인 셈이다. 대승사의 사면불에 대해서는 ‘하늘에서 비단에 싸인 바위가 떨어져 풀어보니 사면에 부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면불이 남아있는 곳은 현재 백률사를 비롯해 대승사 사면불, 경주 남산 칠불암 사면불, 예산 화전리 사면불 등 몇 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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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사면불로부터 절집까지 이르는 길은 갈림길이 계속 이어진다. 갈림길 앞에 서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이쪽이 나을까, 저쪽이 빠를까……. 걷는 길이야 어느 쪽으로든 다 이어지니 어디를 선택하든 마찬가지겠지만 사는 길이에서야 어디 그렇던가. 이차돈처럼 목숨과 신념 사이의 선택만큼은 아닐지라도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선택의 갈림길은 우리를 크고 작은 결정장애에 빠지게 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결정해도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가?’하며 늘 의문을 갖곤 한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선택을 했다고 해도 다른 한쪽에 대한 아쉬움도 남기 일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는 버려야 하는 것이 선택의 법칙인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선택(選擇)’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잘 버리고, 잘 얻어야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역시 어려운 문제다.
 

 


한선영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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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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