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1)
이른 아침을 맞은 검은 도솔천에는 윤슬이 맑게 빛나고 있다.
햇빛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윤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 빛에 취해 아련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생각의 늪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데, 도솔천에서 힘차게 물을 차는 물고기의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검게 빛나는 물에는 봄을 지나는 나무의 초록색이 그대로 녹아들었다.
초록빛 불을 밝힌 나무들의 모습은 어느 것이 그림자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그림자도, 나무도 모두 눈에 보이는 것이니 둘 다 실상(實像)이기는 하겠는데, 또 어찌 보면 둘 다 허상(虛像)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절집 가는 길을 걸으니 역시 불교적인 생각이 깊어지는가 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한 절집에는 색색의 연등이 차일을 대신해서 그늘막을 만들었다.
고운 빛의 연등들은 가로, 세로줄을 맞추어 사이좋게 걸려 있다.
매달린 연등들은 어느 것 하나 그림자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저마다 짝을 맞춰 자신의 그림자 하나씩을 절 마당에 드리워놓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림자는 연등이 걸린 모양 그대로 가지런하다.
만약 연등 하나가 잘못 걸렸다면 그림자도 똑같이 엇나갔으리라.
자신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그림자가 아니던가.
우리는 대개 앞만 보며 살고 있다. 자신의 뒤에 그림자가 늘 붙어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림자가 있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도 당연한 그 존재에 대해 굳이 생각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하지만 연등의 그림자가 그렇듯이 나의 그림자도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내 행동 하나, 내 말씨 하나에도 허투루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곤 한다.
전각 뒤편으로 돌아가니 벽면에는 낙서가 빼곡하다.
자신의 이름과 사연을 내세우고 싶은 이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자신의 그림자는 여기에 남겨두고 저 많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하는 팻말이 무색할 뿐이다.
누군들 작은 부끄러움 하나씩 안고 살지 않을까마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들은 자신의 흔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부끄러운 자신의 그림자 앞에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
바람 잘 드는 ‘만세루(萬歲樓)’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나와 내 그림자는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본다.
아무래도 ‘남의 눈의 티끌보다 내 눈에 박힌 들보’부터 먼저 빼야겠구나 싶다.
한선영 작가는
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