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면서 사람치, 마음치인 저는 절집 가는 길을 자주 걷곤 합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 복잡한 머릿속을 절집 가는 길에서 탈탈 털어내는 것이지요.
처음에 갈 때는 마음속 짐을 내려놓겠다고 이것저것 잔뜩 들고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그저 나를 바라보는 나 자신 뿐이더군요.
그렇게 ‘나[眞我]’와 ‘내[假我]’가 만나는 시간 - <길이 고운 절집>을 걷는 이유입니다.
불교에서는 ‘참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한국에서의 불교는 종교이기 이전에 문화입니다.
절집의 문화유산은 숱한 외침과 전란 속에서도 지켜온 선조들의 미학이자 철학이기도 합니다.
절집의 늙은 나무 기둥은 결마다 자신만 아는 옛날 이야기를 숨겨 두고 있습니다.
절집 툇마루에 앉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 옆에 ‘내’가 와서 나란히 앉을 때도 있지요.
그렇게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만나는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자 위로가 됩니다.
길은 사람입니다. 걷는 길(路)인 동시에 삶의 길(道)이기도 하지요.
두 길 모두 오르막 내리막도 있고,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헤맬 때도 있습니다.
걷는 길이야 다시 되돌아 나올 수가 있으니 고민이 적지만, 인생길에서는 때로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낄 때도 있지요.
그럴 땐 참 많이 아프지만 그러면서 또 한 번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길을 걸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다리도 아프고 숨이 가쁠 때도 많은데 그 험한 길을 왜 걷는지 말예요.
길 위에는 예쁜 풍경들 그리고 오가며 만나는 좋은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요.
길을 걷다 만나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요.
모두가 그 길을 걷지 않았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고운 만남들입니다.
곁에서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고, 홀로 유유자적 걸어서 좋은 것이 길입니다.
게다가 이왕 시작한 걸음인데 가다가 멈추기는 조금 아쉽지요.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중간에 멈추는 것도 어째 좀 찜찜하고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길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니던가요.
‘가다가 멈추면 아니 간만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다른 풍경을 기대하며 걷는 <길이 고운 절집>!
<사진마을> 여러분도 저와 함께 걸으며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만나는 시간 되시기를 빕니다.
한선영 작가는
길치 여행작가,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숫자를 다뤘다.
길치여서 늘 헤매지만 그만큼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는 무한긍정주의자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진다’는 생각에 오늘도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저서로 <길이 고운 절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