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라는 어휘부터 고쳐야 한다.
특히 ‘종군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정신대(挺身隊) 또한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을 가졌으므로 전혀 옳지 않다.
가장 적합한 명칭은 국제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본군 성 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다.
말은 생각을 드러내는 창(窓)이다.
같은 말은 반복해서 사용하면 그 말이 마침내
주문(呪文)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정부건 아니면 국립국어원이건,
시급히 이 용어의 문제에 대한 광정(匡正)을 시도하는 것이 옳다.
( 김종회교수 칼럼)
중앙선데이 2016. 7. 17 일자
일본군 성노예 박물관 뭘 망설이나.... 중.
다큐멘터리 엣세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멘토)는
일본에서 위안부가 돼 악몽 같은 삶을 살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강덕경 할머니의 일생을 그린다 .
1997년에 폐암으로 숨진 강 할머니의 한 영정 사진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일생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전국을 떠돌며 살아온 위안부 강덕경 할머니의
유령 같은 삶을 추적해가는 이야기이다.
배홍진씨가 펴낸 이 책은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
한 위안부 소녀의 삶을 섬세한 언어로 따라 나간다.
저자는 강덕경 할머니가 남겨 놓은 ‘빼앗긴 순정’, ‘마츠시로 위안소’, ‘악몽’, ‘그리움’, ‘
책임자를 처벌하라’, ‘새가 되어’ 등의
그림들을 한 장씩 묘사해가면서 ‘성노예’로서 당시 15세 소녀가 느꼈을
생생한 공포와 수치, 상실된 소녀의 꿈,
인간의 삶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감각적 시어로 전달하고 있다.
日군위안부 출신 화가 강덕경 할머니의 작품
1997년 02월 02일 암으로 별세.
삶보다 질긴 기억.
그들의 그림 안에는 질기게 삭혀온
기억이 고스란히 아우성치고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뱉어버리지 못했던
악몽이 붓을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할머니들이 처음에는 옛날 기억들로 고통스러워 하시다가
차츰 고통을 객관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