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데기에서
일출을 맞으러 나서는 밤엔 늘 설렌다.
어깨에 닿는, 간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배낭의 무게감이 든든하다.
야간버스, 야간기차에 오르는 느낌도 여전히 신선하다.
낯선 타지라면 옅은 불안감이 더해져 오히려 스릴 있겠지만 편한 곳에서의 느긋함도 싫지 않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거창한 일출을 기대한 적은 없다.
마우스질 몇 번이면 널린 게 그런 사진들이고, 사실 남미대륙 드넓은 땅 곳곳에서 이집트 사막에서 홍해에서 시코쿠에서 비현실적인 일출, 일몰을 많이도 봐왔기에 일출에 대한 로망은 남아있지 않다.
경이로운 건 일출 직후의 차가운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다.
숨을 곳 없는 하늘 아래 곳곳마다 예리한 햇살이 꽂히는 황홀경을 사랑한다.
안반데기에선 불행히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잔뜩 심통부리고 있는 구름에 같이 기분이 나빠질 무렵, 그나마 안개가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바꿀 수 없으면 즐겨야지 별수 있나.
사용해 본 적 없는 사진효과를 순서대로 돌려보며 지루함을 달랬다.
검은 구름 틈으로 해가 숨바꼭질을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빛은 좀처럼 내려주질 않았다.
포기하고 구릉을 내려오면서도 아쉬움이 남아 뒤돌아보기를 여러 번, 그렇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맑은 공기 마신 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사진을 하면서 많이 욕심내기도 하지만 많이 욕심을 덜어내기도 한다.
안되면 잠시 내려놓을 줄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