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동백의 계절이다. 황량한 겨울을 빨갛게 견디는 동백꽃을 보며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동백은 강인한 꽃이다. 나무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땅에 떨어졌을 때조차 그 꼿꼿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동백은 무사들의 상징 문장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의 동백아가씨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도 빨갛게 멍이 드는’ 소녀감성이라면 이 땅의 츠바키오토메는 눈보라 속에 피어나 제 몫을 감당하는 당찬 이미지라 할까.
옆 동네 쿠사노 마을 사람들도 동백의 씩씩한 기상을 사랑했다. 동백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정원수다. 오래된 민가에 300살이 넘은 고목이 흔할 정도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구루메 동백 페어에서는 오래 묵은 고목이나 이름난 명목을 공개하는 오픈 가든이 열린다. 수 세기를 이어온 동백의 장한 아름다움을 다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다. 거리마다 피어있는 동백꽃을 순례하는 동백 워킹이 열리는 것도 이 마을만의 독특한 문화다.
마을에는 동백정원도 있다. 메이지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정원이다. 정원에는 500여 종 2천여 본의 동백이 실내외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일본 고유의 동백을 비롯해 베트남 원종 두툼한 꽃부터 중국원종의 여름에 피는 동백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빨갛게 피는 동백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분홍과 흰색, 노란색 동백꽃까지 있다는 걸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색색의 동백들은 이국땅에서 산 넘고 바다 건너 시집 온 새색시들 같다.
동백은 희망의 상징이다. 겨울을 견디노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동네는 지금 동백 세상이다. 씩씩한 동백아가씨들은 봄이 오는 길목까지 어둡고 긴 겨울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유신준 작가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