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일 년 열두 달 가보면 갈 때마다 걷고 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 뜬 새벽이거나 달 뜬 밤이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이 걷고 뜁니다.
일부러 간 건 아니고 우연찮게 지나다 들어서 한 계절을 저도 걷고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쑥스럽고 그래서 구경 온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었습니다. 나중에는 저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 보면 별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아마 제일 흔한 건 철학자가 되는 걸 겁니다. 그리고 가끔은 정치가, 사업가 등도 되고요.
물론 의식주와 취미 등 일상의 다양한 소재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운동장을 걷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공임을 선명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한 건 아니지만 그 안의 한 사람으로 트랙을 돌아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운동장 사용안내만 숙지하고 지키면 기가 막히게 단순합니다.
그냥 걸으면 됩니다. 옳고 그런 건 없습니다.
옷을 뭘 입었든 무슨 신발을 신었든 상관없습니다. 누구 눈치 볼 것이 없습니다.
천천히 걷든 뛰든 빨리 달려서 앞사람을 추월하고 싶으면 빨리 달리면 되고 누가 뭐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철학이고 정치고 사업이고 다 없어지고 순전히 노곤한 육체에 순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걸을 만큼 걸은 거죠.
가붕현 작가는
“눈에 보이는 걸 종이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하도 신기해서 찍던 시기가 있었고, 멋있고 재미있는 사진에 몰두하던
시기도 있었고, 누군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듣기 좋은 평을 해주면 그 평에 맞는 사진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 사진가 위지(Weegee, 1899~1968)의 사진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노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진들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반복 되는 일상생활 속에 나와 우리의 참모습이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래 촬영하다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고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알게 될 그 참모습이 무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