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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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다케야의 사케 만들기

 

 다누시마루에 와카타케야(若竹屋)라는 양조장이 있다. 이 동네에서는 양조장을 쿠라(藏)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와카타케야 양조장보다는 겐로쿠쿠라(元祿藏)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겐로쿠는 양조장이 처음 만들어진 에도시대의 연호에서 이름을 땄다. 겐로쿠쿠라는 올해로 317년을 맞는다. 300여 년을 살아남은 양조장의 비결은 뭘까.

 하야시다 히로노부(林田浩暢,51)사장은 와카타케야의 14대 사장이다. 히토(人)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니 쿠라비토(藏人)는 양조장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하야시다 사장에게 쿠라비토라는 이름은 자긍심의 상징이다. 쿠라비토는 양조장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좋은 술 만드는 일에 평생을 걸었다. 그는 65년생 젊은 사장이다. 젊은 쿠라비토는 시대의 경향이다. 쿠라는 요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사케를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다.
 
 단지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평가해주는 건 아니다. 이 땅에 오랜 역사를 지닌 양조장은 흔하고 사람들의 입맛은 냉정하다. 지금은 맥주의 시대다. 도리아에즈 비루(=일단 맥주부터)라는 말이 그걸 상징한다. 시대의 변화에 밀려 점점 양조장이 사라지고 있다.
 
 사케의 피크였던 1973년에 3,303개소였던 양조장이 2009년부터 절반 이하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사케의 수요가 2005년에 비해 10년만에 30%가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사케의 소비가 줄면 양조장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사케의 위기는 양조장의 위기다. 겐로쿠쿠라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하야시다가(家)의 대를 이은 노력 덕분이다. 그들이 지켜온 것은 좋은 술을 만들려는 고집이었다. 300년을 끈질기게 이어온 고집이다.
 
 와카타케야에는 ‘덴베이 후쿠이쿠 겐로쿠노사케(?兵衛馥郁元?之酒)’라는 긴 이름의 사케가 있다. ‘덴베이가 만든 겐로쿠의 향기좋은 술’이라는 뜻인데 하야시다의 아버지 시절에 복원한 겐로쿠 시대의 술이다. 덴베이는 초대 와카타케야를 만든 설립자 이름이다. 이 동네는 초대의 이름을 대대로 계승하는 전통이 있어 아버지가 13대 덴베이다.
 
 긴 이름의 술에 얽힌 사연은 이러하다. 70년대 후반은 긴죠(吟釀)라는 사케가 개발되어 시장에 나오게 된 때였다. 최첨단 기술로 개발된 신제품으로 그때까지의 사케와는 전혀 다른 품격을 지닌 술이었다. 정미 기술의 발달로 쌀을 40% 이상 깎아낼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쌀은 깎으면 깎을수록 깨끗하고 경쾌한 맛을 내는 사케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신제품에 열광했다. 긴죠 붐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사케는 사케다워야 하는 거다. 깨끗하고 경쾌한 사케만 쫒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소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거다. 시장은 소주로 바뀔 것이다. 일본인이 쌀로 사케를 만든다는 건 쌀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맛과 향을 얼마나 끌어내느냐가 목적이어야 한다. 사케 본래의 풍부하고 깊은 여운이 남는 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고집스런 신념이었다.
 
 아버지는 사케의 원점을 탐구하기 위해 창업 당시의 문헌을 연구했다. 문헌을 연구하면서 사케의 원류가 한국의 막걸리에 있음을 깨닫고 한국의 오래된 양조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업계가 전반적으로 긴죠에 빠져있는 동안 시장을 잘 알지 못한다고 외면을 받았던 아버지의 신념은 결국 겐로쿠 시대의 사케를 재현해 내기에 이른다. 긴 시간의 노력과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그는 결국 사케 본연의 맛을 지켜낸 것이다. 그것이 와카타케야의 고전으로 불리는 ‘덴베이 후쿠이쿠 겐로쿠노사케’다.
 
 사케는 일본의 대표 술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구는 새로워졌지만 사케 만드는 방식은 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사무라이 시대에 만들어진 와카타케야의 기술도 대대로 전수되었다. 쌀과 효모, 누룩을 사용해 기술을 연구하며 좋은 사케를 만들려고 매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케는 재료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장인들의 제조방식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겨울은 양조장이 바쁜 계절이다. 하야시다는 어제도 두시 반에 겨우 눈을 붙였다. 사케는 겨울에 빚기 때문이다. 1월에서 3월까지다. 3개월 동안 빚어낸 술을 1년 내내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사케는 쌀을 증기로 쪄서 말린 다음 그걸 발효시켜 빚어야 하기 때문에 온도관리가 대단히 중요하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발효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더워도 빨리 발효되어 사케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없다. 발효하는 동안 발생하는 열은 사케의 질에 영향을 준다. 온도를 정확히 조절하는 것은 숙련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하야시다가 밤이 이슥하도록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사케를 라이스와인이라 부르는 건 맛이나 알콜 도수가 와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케와 와인의 차이는 발효과정에 있다. 재료가 술로 변화는 과정에 당분은 필수다. 와인의 포도는 포도당이 있어 당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만 발효시킨다. 쌀은 포도당이 없다.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바꾼 후 알코올로 바꾸는 두 번의 발효과정이 필요하다.
 
 사케는 쌀과 물이 주 원료다. 사케를 만드는 쌀은 사카마이라 부른다. 요즘 사카마이의 대세는 단연 야마다니시키(山田錦)다. 야마다니시키는 사케를 위해 태어난 쌀이라는 평을 듣는다. 물은 사케의 80%를 차지하는 필수재료다. 좋은 물은 사케의 명운을 좌우한다. 양조장이 어느 곳에 위치하는냐에 따라 물이 맛과 성분이 달라진다. 물맛에 따라 사케의 맛과 향이 결정된다. 최적의 쌀이 좋은 물을 만나 최고의 사케가 탄생하는 것이다.
 
 좋은 사케를 위한 쌀의 길이는 7mm다. 필요하지 않은 표면은 모두 벗겨낸다. 벗겨내다 보면 5mm 이하가 되기도 한다. 도정률에 따라 사케의 맛이 달라진다. 도정하는 동안 마찰열이 발생한다. 마찰열은 쌀 맛에 영항을 준다. 전문가의 손에 의해 천천히 도정해야 한다.
 
 도정된 쌀은 엄격한 세척과정을 거치게 된다. 쌀은 대개 오전 중에 씻는다. 전에는 많은 양을 전부 손으로 씻었지만 요즘은 기계를 이용한다. 중요한 건 시간을 지키는 일이다. 1분간 쌀을 씻고 1분간 헹군다. 다음 작업은 물에 담그는 일이다. 이게 어렵다. 담그는 시간은 정미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매년 생산된 쌀의 상태에 따라 정밀하게 가감한다.
 
 쌀을 씻는 시간과 쌀이 흡수하는 물의 양을 엄격히 조절해야 한다. 공기와 물의 온도도 중요한 요인이다. 토오지(杜氏, 양조기술자 우두머리)는 쌀이 물에 닿는 순간부터 절대 쌀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초시계를 가동하고 물에서 꺼내는 순간을 카운트한다. 이 과정에서 숙련된 장인의 기량이 나타난다. 쌀이 알맞게 수분을 함유하여 부드러워지고 희게 빛난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나무상자에 넣은 후 그대로 하룻밤 재운다. 다음날 아침 커다란 증기솥에 정선해 놓은 쌀을 찐다. 쌀은 뜨거운 김 속에서 자연스런 단맛을 얻는다. 찐 밥이 옮겨가는 곳은 대개 코우지 무로라고 하는 몰드륨이다. 양조장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여기서 코지균을 첨가하고 하룻밤 재운다. 코지균은 탄수화물을 당분으로 변화시키는 효소를 생성한다. 온도가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제대로 발효되지 않는다. 항상 최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사케만들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는 것은 온도다. 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베보자기에 싸서 둔다. 코지균이 밥전체에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다. 12시간 후 확인한다. 확인후에는 작은 상자에 옮겨 담는다. 발효를 쉽게 조절하기 위해서다. 다음날 코지 무라는 달콤한 향으로 가득찬다. 찐밥의 발효과정이 끝나고 있다. 확인하며 온도를 내려 성장을 멈춘다.
 
 다음 과정은 발효탱크다. 2미터가 넘는 탱크속에 생수와 함께 소량의 효모를 넣는다. 좋은 효모는 나쁜 세균의 증식을 막는다. 포도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마지막 과정이다. 발효탱크안에서도 온도는 중요하다. 온도에 유의하면서 잘 성숙시키기 위해 잘 저어준다. 일주일후 탱크안은 많이 변해있다. 표면은 거품으로 덮인다. 거품은 효모가 잘 증식됐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3일후 소리가 들린다. 이산화탄소가 생성되는 소리, 발효의 증거다. 거대한 탱크가 줄지어 서 있는 양조장은 하야시다에게 마치 신생아실 같다. 어린아이 재우듯 정성을 기울이는 곳이다.
 
 술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25일간 탱크 속에서 모로미라 불리는 원주가 완성된다. 유백색의 모로미는 주머니에 넣은 후 사케 필터를 통해 천천히 사케를 추출한다. 이 과정의 포인트는 낮은 온도를 유지하며 너무 압력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드디어 결정적 순간이 왔다. 완성된 사케를 컵에 담아 색과 맛을 확인하는 시음과정이다. 인간의 혀를 능가하는 기계는 없다. 기계가 발달하여 아무리 성분분석을 잘한다 해도 인간의 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최종 평가는 고객들의 입이다. 고객의 입은 하야시다가 가장 두려워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추출된 사케는 주종에 따라 정해진 병에 담기 시작한다. 올해 만든 사케의 출하가 시작되는 것이다. 와카타케야에서는 겨울동안 13,200키로의 쌀로 30종류의 사케를 빚어낸다. 1.8리터 됫병으로 5 만병 가량의 양이다. 일본에는 수만종의 사케가 있지만 어떤 사케도 맛이 다르다. 쿠라비토들의 노력과 기술, 경험이 어우러져 그들이 지향하는 최고의 사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역에서 빚은 술을 지자케(地酒)라 부르는데 하야시다는 지자케를 지키키 위한 고집이 있다. 우선 술을 빚는 쌀은 인근농가에 계약재배를 한다. 이 땅에서 생산된 쌀과 이곳의 물로 이곳 사람들이 술을 빚어야 순정 지자케라는 지론이다. 3박자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지자케가 아니다. 하야시다의 고집에도 사연이 있다.
 
 하야시다는 어렸을 적 양조장이 싫었다. 목사 아들에게 교회가 지겨운 이치랄까. 그는 젊은 시절 도쿄로 나갔다. 대학을 나오고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고향 다누시마루에 돌아오지 않을 심산이었다. 적어도 그날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삶의 길을 바꾼 사건은 아버지의 부탁에서 비롯됐다. 와카타케야의 새로운 술이 개발되어 도쿄에서 신제품홍보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바쁜 때라서 일손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줄테니 일 좀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백화점에서 판촉행사를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땅바닥을 바라보며 겨우 입을 뗏다. 좀 익숙해지자 판촉일이 재미가 생겼다. 약속한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가져온 신제품이 모두 동이 나는 이변이 벌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까지 와카타케야에서 시행한 역대 판촉행사 판매량으로 2위였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다. 광고회사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양조장의 경영상태는 엉망이었다. 아버지는 오사카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업계에서 처음으로 발효공학 박사까지 취득한 인물이다. 타고난 쿠라비토였지만 경영은 손방이었다. 양조장은 채무액 상한을 넘은지 오래였고 팔려도 이익이 별로 남지 않는 경영구조로 회계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는 5년 경영개혁 계획을 세워 거래처를 순회했다. 병이나 박스, 라벨 회사 등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대로는 다함께 죽을 수밖에 없으니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자고 호소했다. 노력은 협력업체를 움직였다. 여러 곳에서 들여오던 재료들도 일원화해서 코스트를 낮췄다. 단순히 경영부진에 따른 경비절감이라고 말했더라면 제품의 품질만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영업 개혁도 병행 추진했다. 그때까지의 영업은 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사게 만드는 것이 영업이었다. 생각을 바꿨다. 우리는 그런 낡은 영업활동을 하지 말자. 영업부를 해산하고 고객부를 신설했다. 술을 파는 일이 아니라 손님을 즐겁게 하는 일이 우리 회사 존속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손님을 찾는 사케가 아니라 손님이 찾는 사케로 거듭나야 한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사케를 만들자. 우리가 만드는 술을 고객이 찾도록 만들자. 직원들의 협조를 구했다. 전에는 상품판매율을 높이는 것이 영업직원 평가의 기준이었다. 고객부가 생기고 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직원들은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노력을 한다 해서 단기간에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경영개선은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높아지고 경영개혁도 속도를 냈다. 개혁 첫해 매출액은 6억 8천만엔이었다. 대차대조표의 경영성과는 마이너스 8백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값진 성과였다. 전년도 경영성적이 마이너스 1천 5백만이었기 때문이다. 2년째는 판매액이 6억으로 줄어들었지만 경영이익이 4천만을 기록했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와카타케야의 경영개혁은 계속됐다. 지난해 매출은 3억으로 줄었지만 경영이익은 2천만을 기록했다. 그는 힘을 얻었다.
 
 좋은 사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요즘도 계속하고 있다. 매년 계절별로 정기적인 사케 마츠리를 연다. 밴드를 초청하고 하루 종일 사케시음이 이어지는 행사로 사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다. 지역의 사케 애호가들과 함께 겐로쿠 구라의 사케 역사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부정기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한 사케 번개도 있다. 사케 번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이용한 푸드 발표회를 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술지게미를 먹여 키운 사케 돼지고기를 이용하여 음식연구가가 만들어낸 음식발표회를 겸하는 것이다. 사케와 음식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융합 기획된 행사다. 함께 가야한다. 힘을 합하면 길이 생긴다.
 
 그의 노력은 결실이 있어 와카타케야의 사케가 멀리 베이징의 레스토랑까지 간다. 양조장에서 하야시다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여자는 레스토랑의 메니져다. 베이징의 유명한 레스토랑 오쿠라에서 주문 생산주를 빚기 위해 일본까지 온 것이다. 레스토랑 오쿠라의 올해 주문 생산량은 1,500여병. 탱크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라서다.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만 사람 일이 어디 맘먹은 대로 되던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을 둘러보고 해야 할 일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한 때 와카타케야 양조장이 싫어서 도쿄로 도망쳤다. 아버지의 신제품 홍보행사를 돕다가 그가 해야 될 일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왔다. 일하는 동안 그는 행복해졌다. 천직이란 주어지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천직이라 깨닫는 것이라 생각한다. 천명을 아는 것이다. 와카타케야에서 일하는 동안 깨닫게 된 사실이다.
 
 술 만드는 일은 과학이다. 과학은 축적된 경험치로 말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사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맛의 사케를 개발하는 것도 그의 일중 하나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술을 보는 사람의 눈이다. 한병의 술을 보고 얼마나 많은 관찰이 가능할까. 그 관찰력에 따라 새로운 술이 개발된다. 관찰을 어떤 방향으로 살리느냐는 것은 인간의 센스다.
 
 술 만드는 일은 또한 자연이다. 자연은 과학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다. 어제 좋은 술이 만들어졌다 해서 오늘 같은 조건으로 똑같은 술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사케를 완성하는 건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적인 조건들이 잘 작동하도록 돕는 일 뿐이다. 그 ‘돕는 일’이 만만치 않다. 술빚는 일의 어려움이다. 그는 말한다. 쉬운 일이라면 금방 질리지 않겠는가. 사케를 만드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라고.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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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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