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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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마츠리

 

 

마을 진쟈(神社)에서 마츠리가 있었다. 진쟈는 일본 전통신앙인 신도(神道)의 성소다. 신도는 일본에서 자연 발생한 애니미즘 신앙을 말한다. 초기에는 자연물과 자연현상 등을 신처럼 섬겼으나 점차 조상이나 죽은 천황 등의 실존 인물들도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진쟈의 입구에 도리이가 서 있다. 도리이에는 텐만진쟈(天滿神社)라는 석판이 걸려있다. 전국에 수많은 텐만진쟈가 산재해 있어 이곳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따 모리베(森部)진쟈라 부르기도 한다. 텐만진쟈는 텐진(天神)이라 부르는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 헤이안 시대의 우대신)를 추앙하는 곳이다. 뛰어난 행정가였던 스가와라는 헤이안 궁의 고급관료였다. 높은 직책에 올랐던 그는 동료들의 음해를 받아 규슈로 귀양을 가서 불행한 여생을 마치게 된다.
 
그가 죽은 다음 헤이안에 화재가 나고 역병이 도는 등 온갖 재난이 일어난다. 궁중의 관료들은 그의 원령을 달래고자 텐진이라는 가미(神)로 모시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 사당이 바로 기타노 텐만궁(北野天滿宮, 교토에 있는 전국 텐만궁 신사의 총본산)이다. 그는 지식과 학문의 수호자로 알려져 그를 기리는 텐만진쟈는 학생과 학부모, 학자들이 즐겨 찾는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중요한 입학시험에, 학자들은 성공적인 학문연구를 위해 텐진 스가와라의 가호를 빈다.
 
진쟈의 도리이(鳥居)는 신의 영역과 인간이 살고 있는 속세를 구분하는 상징물이다. ㅠ자 모양의 우리 홍살문과 비슷하다. 도리이는 새가 사는 곳이라는 뜻인데 모양도 홰를 연상시킨다. 동아시아 고대유물인 솟대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도리이에는 시메나와라는 금줄이 쳐 있다. 이번 마츠리를 위하여 새로 만든 것으로 짚 빛깔이 선명하다. 진쟈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해태상을 닮은 고마이누가 양쪽에 앉아 있다. 고마이누는 고구려를 뜻하는 고마와 개를 뜻하는 이누가 합쳐진 말로 잡귀의 범접을 막기 위한 조각상이다.
 
참배객은 이중 방어장치를 통과하고도 또 한번의 정화의식을 치러야 한다. 진쟈 앞쪽에 기둥에 지붕만 얹은 모양의 데미즈야(手水舍)가 있다. 대나무 국자로 물을 떠서 손을 씻고 입을 헹구고 나서야 비로소 진쟈의 주 건물인 하이덴(拜殿)앞에 설 수 있다. 하이덴 앞에 서면 새전함에 돈을 던져 넣고 커다란 방울이 달린 줄을 당겨 소리를 낸다. 신을 불러내는 의식이다. 그런 다음 손을 모은 채 기도를 곁들여 2배를 하고 박수 두 번을 친 다음 다시 1배를 하고 물러난다.
 
신도와 천황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신도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본 초대천황인 후손 진무천황을 통해 황실의 계보를 확정했다. 진무천황 이래 아마테라스의 지상 후손들이 천황의 자리에서 일본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600년간 125명의 천황이 오직 한 핏줄이었다 한다. 천황은 신도를 지배함으로 일본인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한다. 일본을 하나로 통합하는 살아있는 강력한 상징으로.  
 
천황이 늘 강력한 권한을 휘두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사무라이들의 집권기인 막부시대에는 교토에 유폐되다시피 살았다. 이름뿐인 천황이었다. 250년 도쿠가와 막부의 종지부를 찍었던 1868년 메이지 유신은 천황의 권력을 복원했다. 1871년에 이르러 신도는 국가종교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이른바 국가신도다. 새롭게 창설된 제국의 육군, 해군과 함께 ‘국가신도’는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천황에 대한 충성을 육성하는 주요한 도구가 되었다. 근대국가 일본의 융성은 아시아 비극의 시작이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화를 구상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그는 근대국가를 설계하기 위해 세 번씩이나 구미를 순방했다. 그는 구미에서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기독교의 저력을 눈여겨보았다. 그때까지 일본은 기독교처럼 강력한 종교적 전통이 없었다. 이토는 기독교와 같은 정신적인 축을 천황제에서 구했다. 그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강력한 국가 통합을 꾀했다. 그것을 현실화시키려 했던 제도가 바로 국가신도다.  
 
이토는 뛰어난 식견과 정치력으로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근대일본의 설계자로 추앙받는 이유다. 그는 일본의 국익을 최우선 가치관으로 삼고 주변 약소국에 피해를 강요한 제국주의자로서 악명도 함께 떨쳐야 했다. 강한 빛은 깊은 그림자를 만든다.
 
마을 진쟈의 마츠리는 소박했다. 마을 주민 몇 사람이 모여 낡은 진쟈에서 치르는 제례는 너무 수수하여 차라리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곳에서 국가신도로 변질되기 이전의 평화로운 인간들의 자연숭배 의식을 보았다. 가미를 불러내어 대접하고 위로하며 인간에 대한 가호를 기원하는 원초적 신앙이었다.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날것의 자연신 사상 그대로였다. 다다미 위의 아이들 맨발처럼 그저 꾸밈없이 천진한 모습들이었다.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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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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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2015.12.15 09:04:48

시코쿠 오헨로 순례길에서 숱하게 보았던 진자, 88개소 사찰이 떠오르네요.

걷는데 급급해서 수박겉핥기식으로만 보았지만요~

사색도 사진도 실패하고, 사람만 몇 건진 것 같아요^^

 

절과는 다른 진자가 어떤건지 이제아 조금 와닿습니다.

게으른꿀벌

2015.12.15 13:44:54

가장 값진 것을 건지셨습니다. ㅎ

김민수

2015.12.15 11:17:12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신에 대한 갈구가 있나봅니다.


게으른꿀벌

2015.12.15 13:46:50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남달리 와 닿으시지요?

전 재운

2015.12.15 23:07:08

신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회사에도 작은 신사와 토리이(鳥居)를 두고 있는 곳도 꽤 있구요.

어느 건물엔 옥상에도 있어요.

제가 사는 곳 맞은 편 옥상에도 보여요!

신승현

2015.12.20 00:48:32

일본은 아직 가본적이 없는데,

가장 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한다면,

영화나 만화로 익숙해진 신사와 축제 라고 말하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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