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사오정’ 정인수의 지구촌 여행 ‘가다보니’ <2>

  길막고 통행 차단…경찰과 대치 사이 끼여 불안

 화난 승객과 시위대, 폭약 위협하고 투석전까지


 jis0201.JPG » 볼리비아 시위대 친구들과 함께

 

우유니사막을 둘러본 후에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기로 했다. 비포장 도로에 혼이 났으므로 이번에 포토시를 경유하여 포장된 도로로 이동했다. 볼리비아 국경도시 투피사(Tupiza)를 향해 가던 중에 탄광촌인 카타자이나 지역을 지났다. 가면서 보니 카존이란 마을에서 많은 차량들이 거꾸로 돌아나오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보니 마을을 벗어나 얼마 가지 않은 언덕에서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차량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나무를 부러뜨려놓고 돌을 굴려 바리케이드를 만든 것이다. 물론 우리 일행을 노리고 길을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정치적 이유로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볼리비아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시위대는 다이너마이트까지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난 편 줄거리)

 

                                                                                           1편-<모래폭풍 막막한 사막, 구세주가 나타났다> 전체보기

 


jis0202.jpg » 볼리비아 시위대가 막아선 도로 


 우리는 막힌 도로 위에서 볼리비아 시위대가 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시위가 끝나야만 통과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우리는 얼마 전에 지나온 카존 마을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2014년 12월 28일, 새해를 아르헨티나에서 맞으려던 계획은 그렇게 난관을 맞이했다.

 

jis0203.jpg » 카존 마을에서 만난 청년들  


  카존 마을 광장은 길이 막혀 되돌아온 차와 사람들로 혼잡했다. 당연히 숙소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마을버스 주위로 모여든 사람 중에 청년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에게 숙소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니 깨끗하지 않지만 무척이나 저렴한 호스텔로 안내했다. 우리는 답례로 청년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jis0210.jpg » 볼리비아 민속춤 경연대회 


 카존 마을의 밤은 무척이나 어둡고 낯설었지만 청년들과 함께 몰려다니면서 두려웠던 마음은 푸근해졌다. 그리고 이날 새벽에는 마치 거짓말처럼 마을의 실내 체육관에서 볼리비아 민속춤 경연대회가 열렸다. 전혀 계획하지 않고 머물게 된 볼리비아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친구들과 멋진 행사까지 만나게 된 셈이었다.

  카존 마을의 아침이 밝았다. 숙소 바로 앞에 위치한 경찰서에서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병력이 모여서 출발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경찰에게 물으니 오늘 오후에는 길이 뚫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오전 중에 시위를 진압할 계획이니 그런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 난관을 뚫고 나갈 방법을 찾는 도중에 우회도로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결국 서둘러서 우회도로로 빠져나가기로 결정했다.


 jis0204.jpg » 볼리비아 시위대가 다시 가로막은 도로 


  우회도로는 시위대가 막힌 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했다. 얼마나 험한지 그리고 몇 시간이나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선택한 길이었다. 비포장 길에 들어서니 걱정이 앞섰다. 아쉬움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도로에서 버스와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길이 열린 것이다. 서둘러서 버스를 돌려 우회도로를 빠져나와서 시위대가 길을 막은 지점으로 달려갔다. 도로를 가득 메웠단 장애물들이 대충 치워져 있고 양쪽에 밀려있던 차량들이 그 사이를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모두 마음이 급해졌다. 버스를 달려서 시위 현장에 도착해서 장애물들을 피하려는 순간, 시위대는 버스 앞을 가로막으면서 다시 나무와 돌로 길을 막기 시작했다.

  시위대에게 어째서 다시 길을 막는지 물었다. 그들은 정해진 동안만 길을 열어주기로 했고 시간이 끝나서 길을 막았다고 얘기했다. 우리 버스는 시위대가 가로막고 있는 길의 가장 앞쪽에 세워진 셈이었다. 버스 주위로 시위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험악한 분위기가 불안해 진 우리는 버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창밖의 상황만을 살펴볼 뿐이었다.

  우리 버스가 시위대 안에 갇힌 지 몇십 분이 지났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감히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시위대에는 어제 저녁 카존 마을에서 봤던 사람들도 섞여있었다. 그저 평범한 볼리비아 사람들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의 맞은편 장애물들 너머에는 많은 버스와 트럭들이 길을 넘어오지 못하고 서 있었다. 문제는 버스의 뒤쪽이었다. 한참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아침에 마을에서 본 경찰 차량들이 서있었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병력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면 길이 뚫릴 것이라고 했으니 이제 진압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셈이었다.


 jis0208.jpg » 경찰 쪽으로 몰려가는 시위대

 
  갑자기 시위대가 경찰들이 있는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흥분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그때 시위대와 경찰이 출동하는 뒤쪽에서 ‘펑’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처음에는 진압하는 경찰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비장해졌다. 이제 우리는 남미의 볼리비아 시위현장 한가운데서 제대로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엎친 데 겹친다고 했던가?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기 위해서 뒤쪽으로 빠져나가자 차단된 도로의 맞은편에 있던 버스의 승객들이 장애물을 치우기 시작했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챈 시위대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길옆 언덕에 서있던 시위대 한 명이 장애물을 치우던 승객을 향해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곧이어 ‘펑’ 날카로운 폭발음이 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근처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공사용 폭약을 가지고 와서 위협용으로 터뜨린 것이었다.


 jis0207.JPG » 버스 승객들과 대치 중인 볼리비아 시위대

 
  폭약 소리에 놀란 맞은편 승객들은 일단 버스 쪽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화가 단단히 난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칠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도로 위에 장애물로 쌓여있던 돌을 집어서 시위대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시위대도 언덕 위에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버스 바로 앞에서는 시위대와 승객들이 투석전을 벌이고 있고, 버스 뒤쪽에서는 언제라도 경찰이 무력진압을 시작할 상황이었다. 그 순간, 나는 버스를 향해서 돌이 날아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주변은 안정을 되찾았다. 맞은편 승객들과의 투석전도 끝이 났고, 경찰들도 당장은 밀고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시위대는 우리 버스 오른쪽의 언덕에 모여서 무언가를 토론했다. 아마도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듯 보였다. 좀이 쑤신 임택 형님은 버스에서 내리더니만 슬금슬금 시위대가 모여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자취를 감췄다. 형님이 안전한지 걱정이 된 나는 버스에서 나와서 언덕 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인파 속에서 얼굴을 내민 임택 형님이 뭔가를 던졌다. 받아 보니 엉뚱하게도 조잡하게 포장된 아이스 바였다. 현지인과 음식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면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었다.

  버스 주위에는 도로를 감시하는 시위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언덕 위에서 아이스 바를 팔던 아이가 아래로 내려왔다.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 바를 모두 사면 얼마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당황했다. 물가가 무척 싼 볼리비아에서는 아이스 바를 모두 산다고 해도 얼마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스박스 통째로 값을 치르고 주위에 있는 시위대에게 아이스 바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jis0205.jpg » 볼리비아 시위대와 아이스 바를 팔던 소년 마르코 


  더운 날씨에 지친 시위대는 아이스 바를 받아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버스 주변에 서있던 시위대가 시원한 아이스 바를 하나씩 물고 있으니 분위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시위대에게 우리 여행을 설명하고 버스에 사인하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화기애애해지기 시작했다.


 jis0206.jpg » 볼리비아 시위대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아리랑 


  우리는 버스에 모여서 모처럼 좋아진 분위기를 이용해서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찾아낸 방법은 시위대 앞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남미여행 전문가 박우물 씨는 마을버스 앞에서 기타를 메고 하모니카를 불면서 유창한 스페인어로 베사메무쵸를 부르기 시작했고, 임택 형님은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언덕 위의 시위대는 토론을 멈추고 공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구슬픈 아리랑을 가락 속에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아리랑 장단에 빠져들고 ‘오~필승 코리아’를 ‘오~비바 볼리비아’로 개사한 노래를 듣던 시위대는 이제 한국의 문화행사에 참가한 관객들처럼 이 진기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시위대는 우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시위대들은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인사를 했지만 길까지 열어주지는 않았다. 지친 우리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종일 팔아야 했던 아이스 바를 한번에 팔고는 할 일이 없어진 아이는 우리와 함께 버스 안에 누워서 가냘픈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줬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던 중에 갑자기 시위대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친숙해진 시위대들은 버스 근처에 와서 뭔가 다급하게 외쳐댔다. 버스 앞에서는 시위대들이 도로 위를 막고 있던 나무와 돌들을 치웠다. 드디어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도로 위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면서 언덕 위의 볼리비아 시위대 친구들에게 목이 터져라 인사를 했다. ‘펠리스 아뇨 누에보 ¡Feliz Ano Nuevo!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도로에서 시위대와 여행자로 만난 우리는 이제는 친구가 되어서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서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3편에 계속)

 글·사진/정인수

 

정인수 씨는 45살을 눈앞에 둔 2013년 말에 근무하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말로만 듣던 ‘사오정’이 되었다.
그런 김에 막연하지만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작가의 꿈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 여행작가학교에서 마을버스로 지구촌을 여행하는 계획을 주도한 임택씨를 만나 동승했다.
정인수는 현재 유럽을 여행하며 틈틈이 실시간 여행기를 올리고 있다.
정인수의 페이스북은 www.facebook.com/insoo.kr이며 스마트폰에서 검색어 insoo.kr를 치면 가장 최근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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