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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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가 찍은 사진

 맑은 날 다누시마루

 오랜만에 보는 맑은 날이다. 햇빛이 반가웠다. 지난여름은 비가 잦은 날들이었다. 심할 때는 하루에도 몇 차례 씩 퍼부어 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믿을 수 없었다. 언제 비가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이 나라의 날씨였다. 배낭에는 접는 우산과 비옷을 준비했다. 점점 비에 익숙해져 갔다. 나중에는 자전거 위에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비는 일상이었다.
 
 백수 일상은 늘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언제나처럼 오전에 다누시마루 도서관에 들러서 주요 신문을 확인했다. 세상은 평온했다. 점심시간 챠임은 이미 울렸는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마트로 갔다. 넓은 매장을 둘러보다가 마침 할인 행사중인 야채쥬스팩을 배낭 옆구리에 넣었다. 마트를 빠져나왔다.
 
 상가거리로 향했다. 대형마트 출현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다누시마루 상가와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이 동네는 군데군데 마을길 상세 안내지도가 있다. 지도를 보며 다누시마루 촬영동선계획이나 세울 생각이었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몇 점 떠 있었다. 하늘은 쾌청하고 거리는 밝았다. 비 갠 오후…. 시험촬영이나 몇 장 해볼까. 카메라를 꺼냈다. 눈에 띄는 건물을 몇 장 찍어 봤다. 그림이 된다. 계획을 바꿨다. 지금 찍어야 한다. 오늘 아니면 찍을 수 없는 게 기록 사진이다. 일단 찍고 다음에 또 찍어도 되잖아.
 
 맑은 날이라 컨트라스트가 너무 강하다. 노출차가 커서 푸른 하늘과 거리풍경을 함께 담기 힘들다. 풍경에 노출을 맞추면 하늘이 하얗게 떠버렸고 하늘을 담으면 풍경이 검게 죽어 나왔다. 뭔가 해결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별수 없다.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할 일이고 오늘은 그냥 찍자. 하늘과 마을풍경 중간쯤에 포인터를 움직여 노출을 조절해가며 셔터를 눌렀다.
 
 낡은 일본식 가옥은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다. 오밀조밀한 건물 구성과 빛바랜 외벽의 낡은 느낌이 카메라를 유혹한다. 일본식 가옥과 좁은 골목들, 오래된 상가 건물들을 부지런히 담았다. 햇볕이 점점 뜨거워졌다. 목마르면 배낭 옆구리에 넣어둔 야채쥬스를 꺼내 마셨다. 비릿한 토마토 맛이 거슬렸지만 갈증은 취향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몸에도 좋대잖아.  
 
 마을을 거의 돌았을 즈음 허름한 술집이 나타났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간판이 햇볕에 심하게 바랬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붙여놓은 가게 이름의 문자조각도 떨어져 비뚤어졌다. 출입문에 걸어놓은 노랭도 너무 낡아서 원래의 색깔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것조차도 한쪽이 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폐가 같은 낡은 주점이었다. 문이 열려있으니 사람이 있다는 얘긴데…. 내부가 궁금해졌다. 배도 고픈 참에 노랭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대낮인데도 실내가 어둠침침했다. 중년남자가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방에서 나왔다. 점심 요기할 만한 게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술집이라 술밖에 없단다. 대신 조금만 걸어가면 맛있는 중국집이 있을 거라고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 집 차항(볶음밥)이 맛있다고 했다.
 
 목이 말랐던 참이라 생맥주를 시켰다. 일단 술집에 들어왔으니 한잔 마시고 일어날 셈이었다. 가게 안을 둘러봤다. 카운터 쪽으로 여느 술집처럼 상표에 단골 이름을 쓰고 키핑해놓은 술병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족히 몇 십 년은 됐을 법한 맥주회사 여성 모델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성냥갑과 알루미늄 재떨이. 흡사 시간이 정지된 무중력 공간 같았다.
 
 더위에 지친 빈속이 생맥주를 반겼다. 시원하고 적당히 쌉쌀한 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잔이 금방 바닥났다. 가게가 굉장히 오래된 거 같네요. 술을 건네주던 늙은 마스터에게서 낡은 주점의 오래된 이력을 들었다. 4대째. 할아버지 윗대부터 백몇 십 년은 됐을 텐데 더 자세한 내력은 자기도 모른다 했다.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중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나는 한국 사람인데 이곳 마을 풍경을 찍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해줬다. 역시…. 말투를 들어보니 여기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단다. 마시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데운 사케라 했다. 찬 것은 속에 좋지 않아서 늘 데운 사케를 마신다고. 그러고 보니 카운터 한쪽에 사케데우는 기계가 놓여있다. 아무리 몸에 좋기로서니 한여름에 데운 사케를?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사케 한잔을 주문했다. 노인이 건네주는 사케 글라스가 좀 커보였다. 나는 술 마시는 분위기는 좋아해도 잘 마시지는 못하는데…. 더운 날 무리하지 말아야지. 이것만 마시고 일어나야지. 나가서 노인이 가르쳐 준 중국집에서 차항을 시켜 먹어야지.
 
 노인에게 손님이 많으냐고 물었다. 오전에는 가게가 꽉 찼는데 잠시 뜸한 참이라 했다. 폭삭 낡은 가게에도 드나드는 손님이 많다니 의외였다.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주변에 사는 단골들인 것 같았다. 마스터가 내 소개를 하고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 사케잔이 비워지자 일행 중 누군가 데운 사케 한잔을 권했다. 또 다른 사람이 조개절임 안주도 시켜줬다.
 
 점심도 먹지 않은 빈속에 주는 대로 받아 마신 것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몇 잔을 더 받아 마셨을까. 갑자기 술이 확 오르기 시작했다. 약한 주량에 감당하기 힘든 양이었다. 그때부터 기억은 별로 선명하지 않다. 떠들썩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는 것만 드문드문 머리에 남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기를 쓰고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노인에게 또 놀러 오겠다며 계산을 하고 나왔던 것 같다.
 
 밖은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오다가 타려고 시도하고 넘어졌던 기억도 난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길가에 뉘어놓고 저녁놀 사진을 몇 장 찍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는 어두워지는 거리를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 돌아와서 그대로 오두막에 쓰러져 잤을 것이다.
 
 목이 말라 일어났다. 새벽녘이었다. 어차피 새벽잠이 없는데 술을 마셔도 일찍 일어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형광등을 켰다. 물을 마시고 앉아 카메라를 확인해보니 술자리 풍경들이 좌르륵 나타났다. 낡은 술집 내부를 몇 장 스케치하려고 카메라 스위치를 넣고 들어갔었는데…. 사진에 내 모습은 없으니 내가 찍은 게 분명했다. 카메라에 비치는 뜻밖의 장면들에 아연했다.
 
 맑은 정신에 초면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주점의 내밀한 장면들을 허락하기도 어려웠을 터. 내가 취해서 함께 어울렸으니 가능했을 사진들이었다.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정신이 없는데다 어두운 가게 안에 P 양식이었으니 당연히 제대로 찍힌 사진이 있을 턱 없다. 균형이 안 맞는데다 흔들리고 잘리고 엉망이었지만 볼수록 웃음이 나는 사진들이었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이방인을 받아들여 주고 함께해 준 사람들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대형마트에 밀려 하루하루 어려운 삶 속에서도 이웃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시장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수더분한 삶이 가감 없이 기록돼 있었다. 팔자에 없는 음주 촬영으로 건진 귀한 보물들이었다. 
 
 삶은 예상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우연한 셔터 찬스들. 낡은 술집 빛바랜 노랭안의 즐거운 추억은 서툰 사진들로 고스란히 남겨졌다. 지금도 가끔 찾아가면 반겨 맞아주는 얼굴들이 많은 곳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마키하라가 말을 걸어온다. 유상, 지난번에 사귀었던 단골 술집 아가씨 미치코한테 차였어. 어떻게 해. 파란만장한 인생 구구절절 피고 지던 연애의 대선배로서 조언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나가 죽어. 가게 안에 웃음꽃이 터진다. 자본주의 그늘에서 점점 문닫는 집이 늘어나는 전통시장.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맑은 날 다누시마루 풍경이다.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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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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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을

2015.10.26 18:07:25

음주 촬영한 사진도 공개하심이 어떠신지요^^

jinude

2015.10.27 15:05:36

음주 촬영한 사진에 미리 추천드려요^^

게으른꿀벌

2015.10.27 19:17:02

혈중알콜농도의 과도한 상승으로 인하여 집단적 오버액션이 난무하는 국제적 아사리판을 공개함에 따라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한 예기치 않은 국제분쟁이 발생함은 예술의 본령이 아닐뿐 아니라 국내 유수의 품격있는 정통 사진예술을 지향하는 사진마을에 심히 누가 되는 행위로 사료되어 한사람의 양심있는 사진인으로서 도저히 공개하기 어려운 입장임을 살펴주시고 널리 양지하여 주시기 바라 마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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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곽윤섭

2015.10.28 21:29:54

아... 이런 신의 한 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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