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 시상식이 열렸다. 국제 공모전이니 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의 외국 작가들도 참가하는 시상식이다. 서양화, 문인화, 서예, 공예, 한국화 등의 분야에서 입상한 사람들에게 시상을 하는데 이중 특별한 이력의 수상자가 있다.
윤용주(54세). 두 발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2년 전 오른쪽 발을 절단했고 지난 4월 왼쪽 발마저 절단했다. 당뇨 이외에도 신장 질환, 천식, 뇌전증, 폐기종의 질병이 있다. 그가 사는 곳은 쪽방촌이다. 50년도 넘은 낡은 건물 반지하 복도 끝에 해가 들지 않는 작은 쪽방이 그의 방이다. 그는 가족과 이별하고 혼자 산다. 정부에서 지급되는 기초수급비가 그의 수입의 전부이다.
한 때 평범하게 살던 그를 쪽방으로 내 몬 것은 무엇일까? 그는 30대 초까지 한국화를 그리는 직업화가였다. 전주에서 상업적인 그림을 그렸다. 일본으로 수출도 하고 병풍도 만들어 팔았다. 돈도 벌었다. 중학교 때부터 익힌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은 것이다. 잘 나가던 사업은 그림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어려워졌다. 잠시 그림을 접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것이 중장비 일이었다. 기술을 배워 현장에서 기사로 일했다. 그 일이 안정되면서 중장비를 구입하여 직접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잘 되던 사업이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때 어음으로 받은 대금이 부도처리 되면서 하루아침에 집, 재산, 중장비를 모두 날리고 빚만 떠안게 되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가정불화가 생겨 결국 이혼에 이르고 어린 두 자녀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고시원과 쪽방을 전전하며 술로 지내다가 온갖 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두 발을 잘라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회복하기 어려운 여러 병이 생기면서 자포자기하여 살아온 것이 지난 십수 년이다. 그는 지금도 부도처리한 건설회사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다. 고의로 부도처리한 그들은 살아남았고, 부도를 맞은 그는 지금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기초수급자인 그는 지금도 한 달에 5만 8천 원씩 빚을 갚고 있다. 사업 실패, 가족 해체, 술, 쪽방과 고시원, 발병, 입원과 퇴원의 반복, 기초수급, 두 발 절단, 이것이 지난 십수 년 간의 생활이다.
그가 이제 웃는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몇 달 전부터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덕분이지요.”
술도 끊었다. 두 발 절단이라는 극한상황을 겪으면서 역설적이게도 그는 더 힘을 얻게 되었다. 15년 동안 복용하던 수면제를 중단한 것도 불과 3개월 전이다.
“이제 심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힘을 내자, 힘을 내자라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몇 달 전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화를 그릴 수 있는 화구를 선물하면서도 좁은 쪽방에서 불편한 몸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환상통을 잊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는 그가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꺾였던 붓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좁은 쪽방에 전지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신비할 정도였다.
쪽방에서 그림을 그리다뇨?
한 사람 눕기에도 넉넉하지 않은 공간에서
한국화를 그리다뇨?
두 발 잘린 지 두 달 된 분이
쪽방 가득히
화선지 펼쳐 놓고
밥그릇에 먹물 붓고
양재기에 물을 떠서
방 바닥에 엎드려
붓으로 그리는 소나무는
이미 소나무가 아니고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니고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닌 듯하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이
마술인 듯하고
착각인 듯 하다가도
그의 얼굴에 먹물처럼 번져가는
미소를 보면
그의 두 눈에 맑게 어른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꿈을 꾸는 것이겠지요.
그가 꿈을 꾸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불평불만도 없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너무 고맙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요.”
이틀에 한 번씩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로 왕복 3시간 걸리는 병원을 다니면서도 불평이 없다. 모든 것이 고맙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힘든 것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아요. 통증도 잊게 되고,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주위 사람들과 얘기도 더 많이 해요.”
이제 여유가 생겼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회복이 되었으니 나도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이구나, 귀중한 존재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발을 잃고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작품씩 그림을 그린다.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한다. 공모전에 응모해 보자는 말에 그는 꺼렸었다. 일단 자신감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중단했던 그림을 다시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도 문제였다. 최근의 작품 경향을 알 수도 없었다. 스케치를 다닐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고심 끝에 응모작을 제출했고, 1차 심사와 최종심사를 통과하여 특선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서 고맙고, 다시 그림 그릴 생각이 들게 해 주어서 고맙죠.”
“이렇게 회복되시니 제가 얼마나 고마운데요.”
“아닙니다. 제가 고맙죠.”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람들은 쪽방촌을 이상하게 봐요. 비참한 곳, 더러운 곳, 불쌍한 곳,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봐요.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을 게으른 사람, 원래부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봐요.” “정부는 보이지 않는 벽 속에 가두어 둔 채 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돈만 지원해 주고, 조용히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언론도 쪽방촌 사람들을 이용해요. 쪽방촌에 대한 이해보다는 쪽방촌의 어두운 면을 일회성 기삿거리로 이용해요.”
쪽방촌에는 쌀도 오고, 반찬도 오고, 빵도 오고, 옷도 온다. 회사도 오고, 기관도 오고, 교회도 오고, 정부도 온다. 목사도 오고, 복지사도 오고, 봉사자도 온다. 그런데 사람은 안 온다.
신문 지면에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에 소개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쪽방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에게 소망이 있다. 공동화장실을 가기 위해 어두운 복도를 기어서 계단을 올라야 하고, 물을 뜨기 위해 복도를 기어 공동세면장으로 가야 하는 쪽방을 벗어나 임대주택으로 가는 것이다. 맘껏 그림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더 큰 소망이 있다.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헤어진 아내, 그리고 성장한 아들과 딸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요.”
그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다.
오랜 풍상을 격어 두터워진 향기로운 자태 나비가 앉다.
청명한 하늘이 늘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평안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