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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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옥은 사진가이자 시인이다.pr02.jpg
향수전국사진공모전 금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이 입상되었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으로 사진 활동하고 있으며,
삽량문학회 편집장으로 디지털사진과 시로 결합된
디카시를 지역신문에 연재중이다.

저서로 강미옥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눈빛출판사)이 있다.
   
■ 디카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이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5행 이내의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 디카시가 문학용어 명사로 등재]
 

블러그 : <강미옥 시인의 사진이야기>  운영중입니다.
http://blog.daum.net/meokk2  

   

매주 연재합니다. 

1. 자연과 사람의 만남

2. 통도사와 암자이야기

3. 풍경 속에서 감성찾기.. 세가지 주제를 돌아가면서 연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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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nae1004

2017.04.02 20:31:16

시인과 사진작가는 하나의 눈을 더 가진 존재라 생각합니다.

귀 또한 하나를 더 가진 존재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민한 시각과 청각으로 타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타인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시나 사진으로 육화시키는 존재들이니까요.

강미옥작가의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은 그래서 더욱 특별합니다.

시인이자 사진작가로서의 명민한 그 두 개의 귀와 눈을 가진

강미옥작가의 디카시집이니까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세계가 흡! 하고 숨을 멈춘 순간의 형상을, 디지털카메라에 담고

그 세계가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짧은 오행 이내의 문자에 담아내는,

언어예술을 넘어 멀티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한

디카시의 정체성에 부합하면서 빼어난 영상과 깊이 있는 메시지가

한 몸을 이루어 울려내는 울림은  한 편 한 편 디카시 앞에서

마음걸음을 쉬이 옮겨놓지 못하도록 합니다.

디카시, 한 편 한 편을 만나면서 마음에는 온기의 불씨를 지피게 되고

자연의 순환 보편 진리를 깨달으며 아하, 아하! 하게 됩니다.

갈피갈피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따뜻한 휴머니즘에 물들며

화되고 울먹이며 그 울림에 젖어있게 합니다.

곁에 두고, 보고 또 보고 싶은 강미옥작가의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입니다.

강미옥

2017.04.07 19:33:04

 

책을 읽었을 때
미술품을 접했을 때
음악을 들었을 때
공감하고 감동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큰 기쁨이다.

현대시는 어렵다.
현대사진은 난해하다.
창작자와 독자(감상자)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소통의 부재를 
강미옥 저자는 '기억의 그늘' 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의 디카시집을 읽어보면
기억의 햇살, 매끄러운 소통이 가득하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절묘한 만남
이미지와 문장이 한 몸이 되어
페이지마다 환한 꽃들이 피어난다

 

[교보문고 조영래 시인의 서평]

강미옥

2017.04.07 19:34:14

사진이 시가 될 수 있을까?
간혹 생각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다.
이미지는 이미지고 텍스트는 텍스트일 뿐, 사진이 시가 된다는 건 과장된 말 같았다.
 
강미옥의 디카시집을 읽고나서, 사진과 시의 경계가 아름답게 허물어져 있는 걸 느꼈다.
그의 사진은 은유가 담긴 시였고, 그의 시는 사진처럼 명징한 울림을 주었다.
사진과 시가 어우러진 작품 속에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 담겨있다.
 
'널뛰기' 사진에 붙인 작가의 시는
<올려주고 내려주며 나를 낮춰 너를 띄우면 / 너도 나도 하늘이 된다>고 했고
모래조각 사진에 <거친 순간도 쓰다듬으면 부드러운 곡선이 된다>고 썼다.
널뛰기 사진에 작가의 시가 없었더라면 아무도 '너도 나도 하늘이 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할 것이며
아픈 세월도 쓰다듬으면 곡선이 된다고 쓴 것은 독자들에게 인생의 묘미를 귀뜸해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강미옥의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은 10여년동안 벼린 시의 칼날이다.
아름답고 애틋하고 뭉클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
그 칼날 위에서 강신무를 추듯 작가는 사진으로 시를 쓰는 것같다.
 
< 둥근 언덕, 풍요로운 초원. 한때 어린 양들의 초원이었지
 지금은 건조하지만 아름다운 우물 >
쪼글쪼글한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부채질을 하는 노인의 사진 '오래된 가슴'은 감동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정작 작가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디카시는
- 노동과 자본 사이 청춘이 있었다. 사랑과 억압 사이 올려놓은 꽃바구니 사이로 어머니의 눈물만 남았다.
와 같이 작가의 민중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생활과 생활 사이에서, 시와 사진 사이에서 작가는 얼마나 바쁘고 생각이 많았을까.
사진은 기술이나 기능만으로 찍는 게 아니라는 걸 많은 독자들이 깨달았으면 싶다.

 

[교보문고 : 지우당 님의 서평]

강미옥

2017.07.01 08:04:11

아주 오랜만에 사진과 사진에 걸맞은 시가 만났다.


이 시집은 감성적인 양립형이다.


왼쪽 페이지의 사진과 오른쪽 편의 시가
감성 무게의 비중이 수평을 이룬다.

너덜한 사진에 온갖 미사여구가 아닌,
단순함과 담백하게 감성의 지향점에 대해 정곡을 찌른다.


어렵지도 않다.
사진을 보고 시를 읽으면 시가 무슨 은유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사진은 직관이고 시는 은유이다.


직관의 현상을 시로 은유되는 사상의 감정은
일반적 사진에서만 나올 수도 없고
시 자체로써도 부족하다.


시에서 한층 비틀면 은유가 외계어가 되지만
이를 사진은 직관성을 통해서 다시 중화시킨다.

 
그래서 감성의 효과는 시너지를 일어나게 한다.
즉 시의 언어가 짙어지고
이미지의 사진이 다시 보이는 합일점을 만나게 된다.


사진이란 이렇게 시를 유도하고 시는 다시 사진을 요구한다.

이른바 현대에 사진으로 인해서 발생한 새로운 문학 장르인
"디카시"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예술적인 하이브리드인 셈이다.


융합이라는 공학에서 나오는 뜻이
영상 언어와 텍스트 언어가 만나서 나오는
조합의 새로운 세계였던 것이 아닐까.


역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균형추가 공평하다.

사진도 참 적절하다는 느낌.

그리고 이에 걸맞게 짧아서 더 함축의 은유된 시구절에
감성의 열쇠가 마음의 자물통에 접점하듯이 사진과 시가 만났다.


사진을 보니 작가는 참 부지런했음을,
그리고 시를 보고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그 느낌의 핵심에 대해 무척 다듬었구나 싶었다.


옥과 석은 구별되는 것이 다듬었을 때와 그저 주웠을 때의 차이이다.
사진을 시로 다듬었던 것이 아닐까 했다.


셔터를 누르면 어느 것이든 다 사진이란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사진이라도 다 사진일 수는 없다.


실수로 눌러진 셔터로 찍힌 사진도 사진일 수야 없다는 정의는 확실하다.
그러나 작가의 사진 다듬기는 결국 시로써 표현된다.


그래서 다시 시가 사진을 수식한다.
이 두 개의 예술적 포인트가 희석 됨으로써
시너지의 효과는 감성을 더 자극한다.


그래서 그저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다듬어서 찍은 사진이란 뜻이다.
사진의 농축이 시로 나타나고
시의 은유가 사진을 수식하는 콜라보. 역시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때까지 그런 경험 숱하게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에 무슨 말 한마디 못하는 감성 무심형을 많이 접했던 탓이다.


내가 무슨 생각과 의미로 셔터를 눌렀던 그 동기에 대해
스스로가 모호하다면 과연 사진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가 했음에도 내가 했다고 증명할 수 없는 언어는 결국 누구의 것인지 모호해진다.


스스로에게 설명이 안된다면 누군가에게 내밀어서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일종의 강권일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에게 공감이 되어야 할 첫 번째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사진에 더 많은 공감이 시로써 표현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 당연성 앞에서 무너지고 나면 사진은 겉돈다.
겉도는 이미지에서 그 감성의 이야기는 매몰될 수밖에 없다.


대체 내가 찍었는데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지
오랜 기간의 일관성은 이렇게 사진으로 입증되는 이유.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무리 이미지라고는 하지만
역시나 텍스트는 사라질 수 없다.


TV가 나올 때 라디오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전파를 타듯이
텍스트는 이미지 위에서 잘도 논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이미지와 텍스트의 접점이 없을 수가 없는
당위성, 당연성은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진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묻는 설문지와 같다.
그래서 묻는다.
사진에서 도출되는 텍스트의 언어는 무슨 의미인지를 은유한다.


물론 사진만으로도 족할 수도 있고 시의 언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에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끝없이 연금술을 하듯이 융합하려 들고 해체하려 들며 부수고 다시 조립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하다.


그래서 감성은 변화로 곧 진보해야 한다.
머물러 있을 때 고착된 무변화성은 답답함을 느끼는 이치이다.
연연히 흐르는 강물의 변화에서 일관성에 더불어서 변하는 시간의
영속적 성질을 사진과 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는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닮았지만 그렇다고 사진에서 나오는
그 언어의 맥을 놓치지 않으니
이런 흐르는 물의 일관성이 곧 작가의 삶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은 엄연히 사물의 형태적 복제이다.
이를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자기 동일성이 없는 복제라는 뜻이다.


우리의 유전자가 바로 이런 복제의 사슬과 같다.
그러나 이런 무수한 반복적 복제에서 사슬 단 하나가 배열을 변화시킬 때
유전자는 진화라는 결과로 도출한다. 바뀐다는 뜻이다,


그저 늘 똑같은 반복에서 작은 변이로써 사진에 추출된 시가 곧,
그 진일보의 역할을 해내는 중요한 변수 인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진은 단순히 복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변이의 그 현재진행형의 행횡을 도모하는 순간이라는 점이다.
반복과 수식, 동등성과 균형성,
이 몇 개의 키워드가 새로운 장르의 잉태함과 탄생으로 연결되었다.
 

페이지마다 걸려 있는 사진과 그리고 5행 이내의 짧은 은유의 시가 만나서
이렇게 접점의 융합이라는 콜라보를 만들어 내는 시집.
정말 만나고 싶었고 만나니 반가웠다.


시가 시로써 단독으로도 가능하지만 나는 사진을 첨가 시킬 때
만들어지는 감성을 사랑한다.


오랫동안 사진과 시로 다듬은 작가의 노고에 책으로 많이 알려지길 원하다.

그리고 그런 사진과 시로써 예술적인 감성이 더욱 증폭되고 기폭제가 될때
이 황무지 같은 시대에 바싹 마른 가슴에 물이라도 흘러 들는
흠뻑 젖어드는 효과를 누리면 삶이 더욱 평화로울 수 있기를 고대한다.

참 찡한 사진과 글이었다.


[강미옥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 :  리뷰- 알라딘 - 유레카(유병찬)님]

 

PS : 이 사진 시집을 알려주신 지우당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 작가님에게도 꼭 감동이었다고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리뷰 좀 길게 적고 싶었지만
요즘 제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니 줄였음을 고백합니다.
작가분에게도 알려 드리세요.
감동하는 유레카도 있었더라고 말이죠.


[알라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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