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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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에 찾은 백마고지에서는 「제60회 현충일 백마고지전투 추모행사」가 막 끝난 참이었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때라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 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없이 당당하게, 가슴에는 온갖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백전노장 한 분이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웠다.
 
1951년 7월에 시작된 정전회담이 지지부진하던 이듬해 10월, 중공 제38군 제114사단 제340연대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백마고지전투는 중부전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혈투중의 혈투였다.
 
1952년 10월 6일 저녁에 중공군은 2,000여 발의 포탄을 투하한 직후 병사들에게 도수 높은 배갈을 먹이고 수류탄만을 휴대시킨 채로 무자비하게 전투를 걸어왔고, 아군 제9사단 제30연대는 포병 및 공군의 지원이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적을 격퇴한 것이 제1차 전투였다. 이를 시작으로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투를 벌였고, 다음날인 7일 밤에 제4차 전투에서 백마고지를 처음으로 피탈당했으나 3시간 40분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다시 탈환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피탈과 재탈환을 10월 15일까지 10일간에 걸쳐 12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7번을 반복했다고 하니 그때 흘린 피와 사상자는 대체 얼마였을까.
애초에 백마고지라는 이름 자체가 수천 수만 발의 포탄에 맞아 허옇게 벗겨진 395미터 봉우리가 백마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니 그 포탄에 맞은 게 봉우리뿐이었을까.
 
그 수천 명의 전사 장병들의 위령비 앞에는 하얀 국화가 애처롭게 놓여 있다.
때마침 현충일을 맞아 문화해설사를 따라다니며 6·25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고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를 기리며 희생된 넋을 추모하는 행렬이 길다.
백마고지에서도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마고지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북한땅이었을 철원평야 뒤로는 철원평야를 빼앗긴 김일성이 사흘 동안을 울었다는 김일성고지도 보인다.
 
백마고지 입구 양옆의 태극기와 한반도 지형이 백마고지를 끝까지 사수해낸 처절한 3,500여 사상자의 희생과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최후의 방어선이었음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이은숙작가는

 

충북 괴산읍내에서도 한참 먼 시골에서 나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읍내 중학교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고
도청소재지 여고를 나와

상경해서는 꿈과는 달리 아주 실용적인 학과를 마치고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직장생활을 하고

20년 직장생활 중 가끔은 다 접고 배낭을 꾸렸던 
돈과 시간 중 넉넉한 게 있다면 여행을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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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꿈을 포기 못해 
사진으로라도 아련한 그리움과 이쁜 색채감을 그려내고 싶은
현실과 타협 못 하고 여전히 이상을 꿈꾸는 초보사진쟁이
  
단국대학교 정보관리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졸업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곽윤섭의 사진클리닉 29기 수료
성남아트센터 사진아카데미 2년 수료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으로 몇 차례 단체전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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