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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가 받아들인 인도문명을 프랑스 학자 조르쥬 세데스는 힌두화(Indianization)로 부른다. 그는 다양한 인도문화 가운데 동남아가 받아들인 것은 특정한 문명적 요소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인도화가 아니라 힌두화 혹은 산스크리트화라고 칭했다. 이러한 인식에서 힌두문명과 토착사회가 받아들여 창조한 것을 국가별로 힌두-크메르(앙코르)문명, 힌두- 자바문명(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유적), 힌두- 참파문명(베트남 다낭 근처)이라 불렀다. 이러한 문명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무려 9백여 년간 참파 왕국의 종교적인 성지였던 미선 유적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른 힌두교,불교 유적인  앙코르와트, 바간, 아유타야, 보로부두르, 프람바난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곳이다. 미선유적의 역사는 4세기 말 참파 왕국의 바드라바르만 왕이 힌두교의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를 모시는 목조 사당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벽돌 건물로 8세기부터 13세기 말까지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미선유적은 참파 왕국이 멸망한 뒤 한동안 정글에 묻혀 있다가 19세기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미선유적이 형성된 시기에는 동일 지역에 종교 건축물이 연속적으로 지어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곳은 학술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으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바 여신상 등 유적 중 상당 부분은 다낭의 참조각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폐허의 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볼 수 있게 하는 혜안을 의미한다. 시간의 녹청을 머금은 돌들의 교합과 갈등, 돌로 지어진 사원은 돌 위에 돌이 자라고 세월을 아교 삼아 솟아오른 대지의 호흡과 다를 바 없었다. 돌은 무너진 채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다. 돌은 쌓여서 문명을 이루었고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왔다. 무너진 돌에 남겨진 미련과 질문. 세월을 품은 돌들의 표정은 스산하기만 하다. 앙코르와트의 수백 년 된 돌 틈에 그들의 비밀을 진흙으로 밀봉하여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의 유한한 감정을  영원으로 가져가려 했던 화양연화의 차우는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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