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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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이씨의 자작그림엽서

 

 에테가미(繪手紙,자작그림엽서)전시회를 보러 갔다. 에테가미는 그림이 있는 편지란 뜻인데 엽서크기가 일반적인 사이즈로 정착된 대중미술 장르다. 엽서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한마디 문구를 보태어 완성한다. Simple is beautiful. 에테가미는 단순해서 아름답다.

 장점이 또 있다. 에테가미는 삭막한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는 것. 완성된 작품에 우표 한 장을 붙이면 국내 외 어디든 ‘마음’을 배달할 수 있다. 액자 속에 박제된 장식품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쓸모있는 예술품인 것이다.
 
 전시회 주인공은 오오이시 치요코(大石千代子, 72)씨. 목판화 사부 쿠라토미 선생의 지인이다. 그녀는 20년간 취미로 에테가미를 그려 왔다. 40년 목판화 취미의 사부와 20년 에테가미 취미의 오오이시 씨는 ‘인내는 재능’이라는 금언을 몸소 보여주는 살아있는 전범들이다. 
 
 본시 이 동네 물이 그렇다. 일단 붙잡으면 3~40년은 기본이니까. 고전무용을 하는 하루미씨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춤동작을 50년 동안이나 지속해왔지 않은가. 재능의 비결은 꾸준히 지속하는 일이다. 놓지 않으니 솜씨가 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다.
 
 그녀의 에테가미가 전시된 곳은 옆 동네 쿠사노의 야마베노미치 문화회관이다. 이곳은 100년 전 지어진 서양식 2층 목조건물이다. 건축 당시 규슈지역에서 보기 드문 디자인의 병원건물이었다 한다. 현재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어 시민들의 문화 체험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세팅되어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전시장이 한산하다. 천천히 작품들을 둘러봤다. 부담스럽지 않은 소박한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 온다.
 
 에테가미는 보통 먹으로 선을 그리고 간사이(顔彩)라는 물감으로 채색하여 완성한다. 선 하나의 떨림, 한 방울 물감의 번짐 속에 작자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서툴면 서툰 대로 그 점이 개성이 되어 작품의 맛을 살린다. 소박한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져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에테가미는 어쩌면 아마추어가 빛나는 마이너의 영역이다. 개인적인 느낌인지 모르지만 능숙하게 잘 그린 작품을 보면 왠지 인쇄된 제품 같은 맛이 나서 작품의 아취가 떨어진다. 에테가미는 역시 때묻지 않은 소박함이 백미다.  
 
 그녀의 작품 주제는 주로 생활주변에서 얻는다. 산책할 때 이쁜 꽃이 피어있으면 그걸 휴대폰으로 찍어와 그린다든지 하는 것이다. 소재도 생활주변에서 구한다. 안 쓰는 헌옷의 색상과 질감을 이용한 작품도 있고 사용이 끝난 우표를 그림의 소재로 재활용해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작품. 오후가 되면 베란다에 물총새가 찾아와서 쉬고 가는 걸 눈여겨봤다. 그걸 관찰하며 느낌들을 기록하고 몰래 사진도 찍었다. 최종적으로 사진들과 느낌들을 정리해 하나의 작품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마지막 문구가 인상적이다. ‘내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거야? 리엑션하는 듯이. 2015년 초 여름의 추억’
 
 에도시대 대표적인 우키요에 작가 우타가와 히로시게를 모사한 작품도 눈에 띈다. ‘도카이도 53츠기(東海道五十三次)’란 시리즈 작품이다. 하루 2매씩 꾸준히 그려 한 달 만에 완성했다. 처음에는 빨리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몇 장씩 그렸는데 나중에는 남은 그림들을 아껴가며 그렸단다. 전시장 밖에 떨어진 낙엽들을 주워 자연스럽게 작품 주변을 장식한 센스가 오래 눈길을 끌었다.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랄까. 삶 속에 예술이 있고 예술 속에 삶이 있는 경지랄까. 삶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건 생활 속에서 예술을 누리며 산다는 뜻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누리는 행위가 거리낌이 없다. 삶 속에 예술이 예사롭게 드러난다. 인생도처 유청산. 동네 어디를 가든 친숙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부러운 환경이다.
 
 일본 에테가미의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에테가미는 어느 취미교실이건 반드시 끼일 정도로 일상적인 이 나라의 대중문화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인에게서 받은 에테가미에 감동하여 붓을 잡기 시작한 후 10년을 훌쩍 넘긴 사람의 이야기도 들린다.
 
 추신 : 에테가미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캔버스가 부담스런 사람에게 딱이다. 엽서 한 장을 채우는 거니까. 능숙해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쉽게 시작하고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다. 관심 있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유튜브에 널린 게 에테가미 자료다.
 
 검색창에 일본어로 えてがみ 혹은 繪手紙라는 문자를 넣으면 동영상이 좌르륵 뜬다(좋은 세상이다). 일본어를 모르면 어떤가. 화면을 보면 금방 감이 온다. 좀 답답하다면 간단한 일본어를 배우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관심분야라야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게 외국어니까. 궁즉통이다.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무지 궁금하지 않겠는가!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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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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