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과 경계(4) 원흥동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지나 지축 삼송 다음이 원흥역이다. 원흥동은 고양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솔개, 가시골, 육골, 구석말, 궁말, 웃말, 달걀뿌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고, 예부터 청자를 굽던 도요지가 있어 매일 청자를 굽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 땔감으로 써서 나무가 드믄 드믄 있다 하여 나무드머리(목희리)란 이름으로 불렸다. 육골이란 지명은 인근 사기밭골에 위치한 고려청자 도요지와 관련이 있다. 본래 항아리 유자를 써서 유골로 불리다가 육골로 바뀌었다 한다. 대부분 그린벨트 지역으로 되어 있어 예전의 농촌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현재의 원흥동은 마을 주변의 삼송지구, 보금자리주택인 원흥지구 개발로 인하여 도시화가 급변하게 진행되고 있다.
무심한 세월의 탓인지, 청자 가마터의 특징을 살리려 일부러 그랬는지, 안내판에는 청자의 빙렬(실금)과 같은 무늬가 있었다. 정식명칭은 원흥리 신라 말 고려 초기 청자요(Celadon kilns site from late Silla period to early Goryeo),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4호로 지정되었다. 도요지 유적 안에는 파편들과 송전탑이 있었고 가마는 풀로 덮여 있다. 남아 있는 흔적에서 원래 모습을 찾아보는 상상력이 답사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하지만 텅 빈 충만의 역설은 공허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서오릉 쪽에도 도시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젖줄, 거대한 철탑이 보였다. 왕릉을 골프장과 목장으로 만들어 버렸던 시절도 있었다. 대도시와 신도시 사이 경계에 있는 녹색지대는 점차 설 곳을 잃어간다.
김성훈(아이디: norlam)작가는
부산 출생이며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쌍용투자증권 등 금융 파생상품 관련 기업에서 근무.
건강회복의 일환으로 명상수련과 절집, 왕릉, 폐사지 등의 문화유산 답사기행과 걷기여행을 시작하였다.
법륜스님의 글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잘된 것이다-라는 글귀를 늘 염두에 두고 산다.
늘어만 가는 음반, 공연장 티켓, 그동안 모아둔 수많은 내한공연 연주자 사인이 있는 포스터를 한적한 시골 창고 작업장 같은 곳에 패널로 걸어놓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중 하나이다.
근래는 이미지 인문학, 디지털 미학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