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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온천 좋아하세요?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이다. 온천 생각이 굴뚝같다. 온천 중에도 숲 속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봄날의 노천온천이 백미다. 오두막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미노온천이 주 거래처지만 이 땅에는 어디든 온천이 넘친다. 배낭에는 항상 수건이 준비되어 있고(일본 온천은 수건을 안 준다.) 어느 곳에 가든 주변에 온천이 있으면 일단 들르고 본다. 바쁜 일 없는 건 백수의 최대 장점 아닌가.

지난해 늦은 봄날 나는 물 좋은 노천온천을 또 한군데 발견했다. 실마리는 하루미 씨가 준 입장권이었다. 그녀는 심심하면 온천에라도 가보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봉투 속에는 온천 무료입장권 5매가 들어있었다. 온천이 좀 먼 곳이라서 그동안 서랍 속에서 썩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곳을 찾아 나서보기로 했다. 기타노 온천. 지도를 찾아보니 오두막에서 자전거로 40분 정도 거리다. 바람도 없는 늦은 봄날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온천을 찾아 나섰다.
 
포장된 농로에 간간이 차가 지나간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평화로운 들길이다. 들판에 논일을 하는 트랙터만 보일 뿐 한가롭기 그지없다. 마을 어귀에 고양이가 졸고 있는 동네를 지나고 치쿠고 강도 건넜다. 온천 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30분쯤 달리다가 지나가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조금만 더 가면 건물이 보일 거라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동네를 하나 더 통과하니 강둑 옆에 건물이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제법 큰 건물이다. 입구에 ‘뜨끈뜨끈 온천’이라 써 있다. 프런트에 입장권을 냈다. 오늘이 마침 반액 서비스하는 날인데 그냥 입장권을 쓰실 것이냐고 묻는다. 입장료가 700엔인데 한 달에 한두 차례 반액 할인행사를 한단다. 10매를 한꺼번에 사는 회원가격 600엔이고 현금 입장은 700엔이니 반액은 350엔이다. 5장씩이나 받은 입장권이니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반액 할인행사 날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다. 히노키를 얇게 잘라 정성스럽게 깔아 만든 마루를 구불구불 따라 들어갔다. 여탕의 붉은 노랭이 보이고 이어서 남탕의 파란 노랭이 나타난다. 남탕에는 벽 쪽에 코인로커가 있고 10엔 주화를 사용하게 돼 있다. 동전주머니에 10엔짜리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옆에 있던 여직원에게 잔돈을 바꿔서 짐을 정리해 넣고는 수건 하나 달랑 들고 탕으로 향했다.
 
남탕 안에 여직원이 무시로 드나드는 건 이 동네 고유문화다. 남탕이건 여탕이건 여직원이 무시로 드나들며 청소도 하고 관리를 한다. 벗고 있는 남자들이나(이 동네 사람들은 벗어도 대부분 중요부분은 수건으로 가리고 다닌다.) 그걸 보는 여직원이나 아무 거리낌이 없다. 처음에는 여직원을 보고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이제는 별 수 없이 무장 해제된 지 오래다.
 
탈의실을 거쳐 들어가면 욕탕이 나온다. 상당히 넓은 내탕 한쪽에 씻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구석에는 아담한 사우나도 있다. 욕탕은 넓은 열탕과 작은 냉탕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침탕까지 마련돼 있다. 침탕은 몸 곡선에 따라 머리와 발 쪽이 약간 높게 돼있고 머리 쪽에는 나무로 만든 목침이 있다.
 
몸을 대충 씻고 먼저 침탕에 들어가 누웠다. 적당히 따뜻하여 잠자기 좋은 곳이다. 미노 노천탕에서는 가끔 탕 안에서 기대어 졸아본 경험이 있지만 물속에서 본격적으로 자 본 적은 없다. 누워서 벽을 보니 이곳은 휴양천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온천수 속에 특수 성분이 함유돼 있는 곳만 휴양천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단다. 이곳은 염화나트륨이 포함돼 있는 휴양천이다.
 
한참을 누워있어 봤지만 잠이 올 리 없다. 억지로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천 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는 게 잠 아니던가. 바깥 노천탕 구경을 나섰다. 노천탕은 문 앞 가까이에 넓은 탕이 있고 옆에 작은 탕도 보인다. 바깥에도 사람들이 많다. 미노온천에서는 아담한 노천탕을 혼자 전세 내 쓰다시피 했는데….
 
탕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있고 나무의자에 앉아 햇볕과 바람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월요일에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노인 인구가 많은 곳이니 이곳도 노인들이 많다. 젊은 사람도 더러 눈에 띈다.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곳도 귀농인구가 늘고 있다던데 귀농한 젊은이가 노천탕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월요일 오후의 느긋한 노천탕은 한 때 그의 로망이었을 것이다.
 
조금 높은 곳에 히노키 나무로 만든 둥근 목욕통이 두 개 놓여있다. 개인탕이다. 한쪽에는 중년남자 둘이 들어앉아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고 다른 쪽에는 나무그늘 아래 한 사람이 호젓하게 누워서 노천욕을 즐기고 있다. 봄날 오후 꽃그늘아래 한가로운 노천온천 모습은 거의 무릉도원 수준이다.
 
일단 넓은 노천탕에 몸을 누였다. 적당히 기분 좋은 따뜻함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숲 속에서 뜨끈한 물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게 노천탕의 장점이다.  벗은 몸이 자연 속에서 느끼는 원초적 즐거움으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곳. 거칠 것 없이 벗고 살았던 원시 시대의 해방감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넓은 탕에 잠시 누워 있으니 다들 개인탕이 비는 것을 기다리는 눈치다. 드러내놓고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나무통은 징검다리로 놓인 돌을 여남은 개 밟아야 갈 수 있는 거리다. 나무통이 비는 족족 큰 탕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그쪽으로 움직인다. 일단 한 사람이 개인탕을 차지하면 제한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기다리는 사람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순번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암묵적 경쟁자 들이다.
 
경쟁자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나 혼자 생각일 수도 있다. 이쪽 넓은 탕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개인탕이 비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바깥 노천탕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개인 탕을 목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넓은 노천탕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된 것 같아 통 쪽으로 갔다. 통 지름이 1.5미터쯤 될까. 들어가 앉으니 어깨까지 물이 차는 깊이다. 갓 피어나는 수국꽃 아래라서 햇볕 반 그늘 반이다. 엷은 나무그늘에서 적당히 따뜻한 나무통 속에 있으니 호젓하고 좋다. 마침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곳의 늦은 봄은 비가 잦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다. 잦은 비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배낭 속에 항상 우비가 준비돼 있을 정도다. 노천탕에서 맞는 빗방울은 좀 각별하다.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있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만 비를 맞는다. 뜨거워진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더 할 수 없이 상쾌하다. 실연당한 멜로드라마 주인공이 맨몸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는 기분을 알 것도 같다.
 
성긴 대나무 울타리 너머 여탕 쪽에서 건너오는 소리도 들린다. 입구에서 따로 들어간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이쪽에 대고 소리치는 여자아이 목소리다. 여기는 괜찮다고 이쪽 노인이 응수한다.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다. 물론 높은 대나무 담장으로 가려져 상대 쪽 안위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좀 한산하다. 메뉴 중 가케우동과 오니기리(주먹밥)를 골랐다. 가케우동은 별도 고명을 얹지 않는 기본 우동이다. 우동 400엔에 오니기리 200엔. 대중온천에 딸린 부속식당이라서 가격이 싼 편이다. 가격이 싸다 해서 맛이 떨어지냐 하면 그건 아니다. 식당을 두루 다녀본 결과 이곳 음식점은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기본 질이 보장되는 편이다.
 
잠시 기다리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제법 큰 사발에 담긴 우동에 곁들여진 깔끔한 오니기리 한 접시.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소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법 양이 나오는 메뉴도 많다. 처음 나왔을 때 우동국물을 다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먹다 보니 그릇이 말끔히 비었다. 잘 지은 밥에 소금 간 만 살짝 얹은 오니기리도 소박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둘이 잘 어울리는 메뉴다.
 
식당 한쪽에 공간을 구분해 놓은 휴게실이 있다. 식당은 욕실과 통하는 공간이어서 입욕횟수는 제한이 없다. 점심 후에도 원하면 얼마든지 목욕을 또 즐길 수 있다. (휴양온천이니까!) 휴게실에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다가 다다미 위에 잠시 누워 있는다는 게 깜박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버렸다.
 
경험으로 보건대 온천욕은 대체적으로 한 시간 반 정도가 맥시멈이다. 아무리 온천이 좋다 한들 한번 나왔던 온천에 다시 들어가는 건 쉽지 않다. 하루미씨가 선물로 준 공짜 목욕에다가 낮잠까지 보너스로 즐겼으니 오늘은 충분히 뿌리를 뽑았다. 위치도 알아놨겠다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온천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날씨가 개었다. 여름이 오는 길목의 변덕스런 봄날이다. 온천에서 돌아오는 들길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오두막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거리다. 게다가 봄 나들이는 해찰이 심하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돌아가는 길에 멧돼지를 만나면 안 되니까 페달에 힘을 가한다.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친다. 이대로 달리면 오두막에서 고운 석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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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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