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에페소에서, 폐허의 미학
터키 에게 해 연안 이즈미르주 에페소에 가면
켈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의 잔해들
승리의 여신 나이키의 부서진 조각상
천년 이천 년 된 폐허들이 햇빛 받아 눈부시다
토닥토닥 위로하는 폐허들
허둥지둥 허겁지겁 쫓기듯 살지 말라고
마음속의 폐허를 느긋하게 사랑해보라고
그리스의 기둥만 남은 신전이든
로마의 반쯤 무너진 원형경기장이든
한국의 주춧돌만 뒹구는 폐사지든
폐허는 쓸쓸하다
쓸쓸해서 편안하다
편안해서 아름답다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므로 없음으로
부드럽게 빛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바람도 풀도 뜯어 먹으며
무너질 것 다 무너졌으므로
무딘 마음으로 마음 비우고
폐사지처럼 살 일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마침내 과거를 떠나버렸으므로
무너지는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하는 힘에 순종하여 평화로울 일이다
이미 무너졌으므로 마음 비우고
마음 비웠으므로 넉넉하다
해서 마음속에 황량한 폐허 하나 품고 살 일이다
가끔 폐허 속에 무너진 돌기둥도 세워가면서
세워진 돌기둥 다시 무너지는 것도 바라보면서…….
*어느 시인: 정호승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
<폐사지처럼 산다>
*어느 철학자: 알베르 까뮈
“.... 마침내 폐허가 과거를 떠나버렸으니 무너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해주는 저 심원한 힘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마음 쓸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
<티파사에서의 결혼>, 《결혼,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