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축지(埋築地) - 뻘밭 위의 인생
부산은 해안가 주위를 자갈이나 흙으로 매운 매축지가 많다.
대표적으로 자갈치를 비롯하여 영도 대평동 일대, 초량동과 부둣길도 매축으로 형성된 지역이고, 조금 더 시내 쪽으로 들어가면 진시장 맞은편 자성대 일대도 매축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1985년 개통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좌천역에 하차 후 지상으로 올라오면 좌천가구거리가 보인다. 큰 도로에 인접한 고가도로 아래 깜깜한 굴다리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면 행정구역상 부산 동구 범일5동인 매축지(埋築地)마을의 초입이다. 마을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큰 부둣길과 만나고 그 너머에 컨테이너 하역 등을 하는 5부두를 비롯하여 허치슨부두, 부산해양항만청 등이 부둣길을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다.
학창시절 즐겨 찾았던 그 일대의 부산의 대표적인 삼류극장인 보림극장과 삼일, 삼성극장에서 2편의 영화를 보고 나오면, 길 건너에 있는 매축지마을은 2편 동시 상영되는 영화처럼 호기심이 차오르는 동시에 나에겐 낯설지만 친근한 동네처럼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공간처럼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매축지의 골목길은 그물망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으며 수많은 사연이 골목에서 만들어지고 골목길로 사라져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드러난 낡은 아름다움이 있는 그 골목과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산도 많고 한도 많은 산복도로 마을도 그렇듯이, 해안가 뻘밭을 메우고 들어선 매축지마을 또한 고층아파트 건설로 어수선하다. 낮은 지붕 위로 높이 솟아있는 주상복합건물들 사이로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사람 사는 온기는 신축건물들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사라져간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도 평평한 직사각형이고 매축지 공간도 평평한 네모이지만, 그곳의 수많은 사물들은 슬픔과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매축지 마을의 부엌과도 닮아있다. 저녁 무렵 좁다란 골목길에 가로등이 켜지면 미역국 끓는 냄새가 춤추듯 넘실거린다. 나는 그 공간을 음미하듯 거닐다가 만나게 되는 언뜻 보이는 아름다운 장면들, 사람들의 허물없는 웃음과 서로의 삶을 끌어주고 당겨주는 뻘밭 같은 찐득한 사람들 이야기를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