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_산판 #10 숲 2
소나무재선충병 감염지역 삭벌작업 3일째. 아침에는 밤새 내린 봄눈으로 온 산이 하얗더니 해가 뜨고 점심 무렵이 되자 나무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후는 맑은 봄날이었다. 하산 무렵에는 1년 중 이맘때만 볼 수 있는 진달래 빛이 아름다웠다.
일하다 잠시 쉬는데 해부학처럼 절개된 숲이 보였다. 보니까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숲이 사람 손에 달린 시대가 보였다. 그러나 3억 5천만 년을 살아오는 동안 공기 만들어줘 물 저장해줘 먹을 거 키워줘 목재로 써도 뭐라고 안 하지 계절마다 풍경은 문학이든 그림이든 가무든 잘하라고 자극 주지 아픈 사람 치유까지 해준다고 하지 그런 것 생각해보면 숲이 과연 사람 손에 매달린 건지 사람이 숲에 매달린 건지 생각이 깊어졌다. 삭벌 중에 앞의 절단된 숲 단면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니까 뭔가 꼬인 듯 기분이 묘했다.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흐르는 강물을 오래 바라보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작업 중 쉬는 시간에 생각이 깊어지는 건 경계했어야 했다.
가붕현 작가는
“눈에 보이는 걸 종이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하도 신기해서 찍던 시기가 있었고, 멋있고 재미있는 사진에 몰두하던
시기도 있었고, 누군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듣기 좋은 평을 해주면 그 평에 맞는 사진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 사진가 위지(Weegee, 1899~1968)의 사진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노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진들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반복 되는 일상생활 속에 나와 우리의 참모습이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래 촬영하다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고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알게 될 그 참모습이 무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