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그의 겨울
전에 없이 구부정한 모습과 멍한 눈빛이 낯설다.
88세의 노구에도 꼿꼿한 자세와 또렷한 눈빛은
늘 한결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여러 권의 두툼한 책들도, 앉은뱅이
의자도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한눈에 알게 해주던
종이 간판도, 이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가지고 다니던 여행 가방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이사를 하던 와중에 근처 지인에게
그 가방을 잠시 맡겼는데 잃어버렸다 한다.
오랫동안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주었고
그 책임에서 벗어 난 이후에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았던 그 가방을,
그의 모든 것이 들었다 해도 과하지 않을
그 가방을 잃어버리다니.. 나 또한 망연자실,
한동안 발끝만 내려다보며 주억거리다가
하릴없이 쌍화차 한 잔을 건네고는 돌아선다.
이래저래 2020년 말, 그의 겨울이 유난히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