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_산판 #133 추분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진짜 가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즈음의 공기는 유난히 맑아 가시거리가 좋다. 새벽이면 안개와 운무도 잦다. 경치가 좋다. 다래와 밤 등 가을 열매들도 거의 다 익어간다. 수확의 계절이 온 것이다.
다래덩굴이 있는 숲을 벌목하는 건 아주 위험하다. 나무들이 다래덩굴로 연결되어 있어 원하는 방향으로 나무가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쓰러지는 나무가 뒤의 나무를 끌어 쓰러뜨리거나 부러뜨려 작업자를 덮칠 수도 있다. 그런데 위험하지만 이 다래덩굴이 요즘 열매를 맺을 때다. 굵은 다래덩굴을 가라앉혔더니 아주 많은 다래 열매를 매달려 있었다. 어떤 사람은 큰 검정비닐봉지 가득 따 챙겼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거 딸 시간에 일을 좀 더 해야지 뭐 하는 것이냐 핀잔을 주며 계속 일을 했다. 전에는 후자의 사람이 맞다 생각했지만 해가 지나며 좋다 나쁘다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성격차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 고추를 중심으로 농사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요즘 소위 ‘대박’이 났다고 한다. 긴 장마로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값이 오랜만에 최고라고 한다. 이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오늘 농산물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추석을 앞둔 가을은 요즘 이 사람 같은 기분이어야 하는데, “여유 있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사람이 그런 경우로 비가 와 일을 쉬게 되어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일 년 중 산판 일거리가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풀베기 철이 거의 끝나고 삭벌, 간벌 등의 기계톱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일종의 ‘수확’이기를 바라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조금 불안하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아 나무 값이 너무 안 좋다고 한다. 나무 장사가 까딱하면 적자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소식이다. 우리 벌목꾼들 입장에서는 일을 하고도 인건비를 제 때 못 받거나 다 못 받거나 아예 못 받거나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경치가 좋아 일하다 잠깐씩 산을 봤다. 바람소리만 들렸다.
가붕현 작가는
“눈에 보이는 걸 종이로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하도 신기해서 찍던 시기가 있었고, 멋있고 재미있는 사진에 몰두하던
시기도 있었고, 누군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듣기 좋은 평을 해주면 그 평에 맞는 사진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미국 사진가 위지(Weegee, 1899~1968)의 사진들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노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진들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반복 되는 일상생활 속에 나와 우리의 참모습이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래 촬영하다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 믿고 카메라를 들고 다닙니다. 제가 알게 될 그 참모습이 무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