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에서 >
도시의 거리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걸어야 한다
더 빨리 걸어야 한다
넘어지면 쓸려간다
앞서기 위해 뛰어야 하고
뛰기 위해 불안해야 하고
불안하기 위해 무서워야 하고
그래
남들 뛰니까
멈추면 사라지니까
아니다
도시의 거리는 누군가 움직이는 것이다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쓸어버리기 위해서
무언가를 위해서
그래
어차피 뛰니까
멈추면 안 되니까
아니다
도시의 거리는 내리는 것이다
내려야 돌고 돈 거리가 보이고
내려야 지하도 침낭이 보이고
내려야 구한말 길거리가 보이고
내려야 우산 쓴 장기판이 보이고
내려야 종로 오가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는
신동엽의 낯선 소년이 보이고
그래
멈춰야 하니까
살아야 하니까
아니다
내일
도시의 거리는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
원래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