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지 시인지
사진 찍기 어렵단다
유명한 누구는 일년에 한 작품 찍기도 어렵단다
40층 번쩍이는 유리 빌딩이 둘러 싸 보초를 서고
서너개 교회 높은 십자가가 찬송가를 부르고
50년 된 벽돌건물이 50명을 잠 재우고
한평 방안 냉장고, 전기밥솥, 서랍장, TV, 이불, 옷 사이에서 브루스타가 요리를 하고
40년 된 구멍가게 돈통이 막걸리를 팔고
오전 10시 누워 술 취한 하늘이 구름과 시비붙고
오후 4시 엎드려 흔들리는 땅이 고함을 치고
지나가던 강아지가 사진 포즈를 취하고
비둘기가 육개장에 밥 말아 먹고
연탄불 위 우산 쓴 주전자가 커피를 배달하고
옥상 빨래줄이 남산으로 떠오르는 달을 낚시질하는
쪽방촌에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셔터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되는데......
이게 사진인지 막걸리인지는
사진가에게 물어 볼 일이지만
시 쓰기 어렵단다
유명한 누구는 일년에 한 작품 쓰기도 어렵단다
중동 가서 번 돈 바람난 아내에게 주고 가출하여 혼자 사는 70살 임씨가 시를 쓰고
아홉 가지 병 1급 시각장애 48살 곽씨가 설교를 하고
새벽부터 폐지 모아 날마다 저축하는 53살 고씨가 자기 쌀을 나눠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듣는 것이 평생 소원이던 노씨 장례식에 옆방 사람이 상주하고
30년 쪽방 하얀머리 할머니가 공원 청소를 하고
평생 발명가 국가유공자 할아버지가 50달러 용돈을 주고
옛 애인 우연히 만나 한 방에 사는 아저씨가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알콜중독 아들 데리고 사는 늙은 어머니가 술 취하는
쪽방촌에서는
귀에 들리는 대로 긁적거리기만 하면 시가 되는데......
이게 시인지 막걸리인지는*
시인에게 물어 볼 일이지만
한 장 사진 찍지 못하고
한 줄 시 쓰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도 부처도 보기 어렵단다
유명한 누구는 평생 못 보았단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없는
쪽방촌에는
천 명 예수가 사진 찍고 있는데......
천 명 부처가 시 쓰고 있는데......
누가 예수인지 누가 부처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최승자 시인의 '이런 詩'에서 인용
김원 작가의 여시아견(如是我見)
직장인이다. 틈나는 대로 사진 작업을 한다.
쪽방촌과 기독교 수도원을 장기 작업으로 계속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할 것이다.
여시아견(如是我見)은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진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쪽방촌, 수도원, 소소한 일상, 이 세 가지 주제가 내가 카메라로 보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카메라로 본 세상, 그것이 여시아견(如是我見)이다.
김원 페이스북 www.facebook.com/won.kim.5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