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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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잠이 없다. 졸리면 시도 때도 없이 눈을 붙이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눈을 붙이면 밤에 잠이 안 온다. 백수가 불면증이라니 소가 웃겠다. 웃어도 할 수 없다. 백수도 불면증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 알고 봤더니 이건 불면증이 아니다. 후지모토 켄코가 지은 ‘짧고 깊게 자는 법’을 봤더니 암환자 1에 암 노이로제가 100이듯 불면증 1에 불면증 노이로제가 100이란다. 날마다 밤을 꼬박 새울 정도가 돼야 비로소 불면증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다수의 노이로제환자들에게 네 가지 처방을 제시한다. 마인드 컨트롤법 - 일, 건강, 가족 걱정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당신이 해결 가능한 것만 생각하라. 신경 이완법 - 가벼운 운동을 하라. 따뜻한 욕조에 들어가든지 만화도 보고 경음악을 들어라. 자기 최대능력 도전법 - 한밤에 잠깨어 잠들지 못하면 일어나 앉아서 책을 읽든가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체력이 얼마나 강한지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라. 과잉에너지 승화법 - 낮 동안 운동량을 늘려서 에너지가 바닥나게 하라.
 
 그래서 어제 낮에는 자전거로 몸을 좀 혹사시켰다. 라이딩 후 나른한 피로감은 훌륭한 수면 보조제다. 오두막 뒷문을 열어 놓고 시원한 물이라도 몇 바가지 끼얹으면 그 상쾌함이란 천국이 따로 없다. 얼마 전 구입한 전동 자전거 덕에 라이딩이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건 악명높은 오두막 입구 오르막을 자전거를 탄 채 올라갈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물론 페달은 밟아야 한다. 페달 어시스트 방식이라서 오토바이처럼 당기면 나가는 게 아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1 센티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전동자전거를 구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두워진 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가 멧돼지라도 만나게 된다면 상황처리가 심히 난감했었다. 이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 타고 올라가다가 일단 유사시에는 바로 자전거를 돌려 도망칠 수 있다. 더구나 경사 심한 내리막이라 쏜살같이 내뺄 수 있으니 성질 급한 멧돼지는 금방 추격을 포기할 것이다.
 
 어쨌거나 라이딩 덕분에 엊저녁에는 잘 잤다. 잘 잤으면 미련없이 일어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밖은 밝아오기 시작했다. 일어났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 본다. 오두막의 아침은 빠르다. 아랫동네보다 하늘이 150미터나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힐끗 하늘을 본다. 동쪽 하늘이 발그레 하다. 꽤 괜찮은 아침놀을 직감한 백수는 다시 들어가 카메라 장비를 챙긴다. 일출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동쪽 바위 더미 위가 이 근처에서 제일 전망이 좋다. 좋은 사진은 자리가 반이다. 아니 8할이다.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촬영위치는 좋은 사진을 얻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아침 하늘은 이미 드라마를 시작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오늘의 명장면을 놓칠지도 모른다. 서둘러 삼각대를 편다. 광량이 부족해 낮아지는 셔터속도에 대한 대책이다.
 
 모니터로 그림이 떠오른다.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이 얼마나 이쁜지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태풍이 지나갈 무렵이 아니면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놀은 보기 힘들다. 아침 하늘은 넓은 캔버스다. 위에 계신 분이 얼마나 능숙하게 많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초대형 퍼포먼스다. 연한 오렌지색에서 진한 감귤 빛으로 변하는 하늘빛이 심하게 맘에 든다. 줌을 밀고 당겨 보기도 하고 카메라 방향을 조금씩 틀어보기도 하면서 떠오르는 풍경들을 부지런히 주워담는다. 갑자기 밤새도록 먹잇감을 제대로 못 찾은 능력 없는 모기 몇 마리가 나타나 잉잉거린다. 모기 때문에 사진을 망칠 수 없다. 잡아먹든 지져 먹든 맘대로 해라. 하늘에서 지상 최대의 쇼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인데 사진을 위해서라면 헌혈 정도는 얼마든지 할 용의가 있다.
 
 부지런히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는데 화면 한쪽 구석에 산이 겹쳐 만드는 그라데이션이 잡힌다. 천천히 당겨 본다. 채도차가 휘황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평소에 이런 걸 원했던 거야. 마라토너가 느끼는 러너스 하이가 있다면 사진가에게는 포토그래퍼스 하이가 있다. 조사가 월척을 건져 올리는 짜릿함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겹겹이 둘러싸인 지리산 풍경보다 못하지만 근사한 그림이다. 선을 더 깔끔하게 뽑아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싸구려 카메라로는 어림도 없는 욕심이라는 걸 잘 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삶에서 황홀한 순간들은 얼마나 짧은 것인지. 금방 해가 떠오른다. 이제 더 잡을 그림은 없다. 아침작업 끝이다. 천천히 장비를 거둔다. 주워담은 풍경 중에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이 남아있긴 하지만 셔터를 누를 때 감이 좋았던 몇 장 때문에 마음이 뿌듯하다. 사진이 타이밍이듯 삶도 타이밍이다. 얼떨결에 일찍 잠이 깨어나 아침부터 횡재하지 않았나. 촬영을 마치고 돌아서는 백수 뒤로 찬란한 아침햇빛이 금가루처럼 뿌려진다. 좋은 아침이다. 언제부턴가 카메라를 좋아하게 된 백수는 심심하지 않아서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찍을 건 많다.

 

 


유신준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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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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