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광원, 열 네 번의 봄 >
시는 외우는 대상이 아니다. 공감하는 대상이다. 공감하고 되새김질하여 나를 생산해야 한다. 그것이 시다.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보는 대상이 아니다. 읽어내야 한다. 삼켜야 한다. 삼킨 사진의 상처가 눈으로 뛰쳐나와 나를 생산해야한다. 그것이 사진이다.
내 사진이 그랬으면 좋겠다.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았으면 좋겠고 모든 것이 사라진 얼굴에서 따뜻함을 찾았으면 좋겠다. 모든 순간이 발견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눈 뜬 장님이 아니라 눈 감은 사진가였으면 좋겠다.
‘동광원, 열 네 번의 봄’ 사진전을 보고 나서 따뜻하다고 말한다. 어떤 분은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한다. 누구는 힐링된다고 한다. 어떤 성직자는 성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시인은 사진이 시와 비슷하다고 한다. 원로 사진가는 이런 게 사진이라고 한다. 작가에게 건네는 격려의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사진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는 내 개인의 사진전이기도 하지만 동광원에 계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십 사 년 세월 동안 내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싶다. 순결하면서도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의 모습이다. 따뜻하지 않을수 없다. 사진보다 그 분들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보였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누군가 작품을 판매하느냐고 물어왔다. 살만한 사진이 있냐고 되물었다. 내 가족같은 분들의 사진이다. 그러니 살 만한 사진은 없을 것이다. 대신 내가 살 것이다. 모든 사진을 살 것이다.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기 때문이다. 모두 팔리기 전에 오시라. 와서 사진을 읽어 보시라. 그리고 삼켜 보시라.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