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골에서
ㅡ외로움에 대하여
남산 위에 저 소나무도 외로워서 철갑을 두른다
철갑을 두른 소나무들 외로워서 휘어져 자란다
남산의 첨탑도 외로워서 하얀 낮달을 바라본다
간판의 빌리 엘리어트도 외로워서 춤을 춘다
남산은 외로운 사람들을 부르고
외로운 사람들은 남산에 와서
외로움은 외로움을 위로한다
길 한가운데 노란 선은 길게 뻗어
시각장애인의 외로움을 배려한다
오후의 빗긴 햇살이 남산의
외로움을 부드럽게 토닥거린다
올해 세상을 떠난 정진규 시인의 시처럼
철저하게 혼자인 사람들을 위해
내연의 연인이 되어주는 남산골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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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의 시법(詩法)>
정진규 (1939-2017)
되도록 철저한 혼자일 것,
심상의 깊은 그림자들과 만날 것,
단 젖을 것,
깊이 젖을 것
비를 내리게 하실 것,
꿈보다 더 꿈이실 것,
그러나 예의 그 눈물 목소리로부터
해방되어 있을 것,
사물이나 사태의 이행 변화를
뜨거운 감각으로 수용하되 의미를 버리지 말 것,
음악의 풀밭에서 돋아나는 싱그런 상추 한 잎
그걸 어렵게 따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한 마리 새일 것,
그런 내연(內緣)의 여자 하날
깊이 감추어 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