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매 시집가는 날
한밤중에 요의를 느껴 눈을 떴다. 자기 전에 마신 사케가 원인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공기가 차다. 한겨울이니 당연하다. 더구나 오두막은 지대가 높아 마을보다 2~3도 더 떨어지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아스라한 향기가 느껴진다. 한겨울에 웬 향기? 내가 잠이 덜 깼나?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나섰다가 향기의 진원지를 알아냈다. 오두막 옆 묘목밭이다. 눈을 맞고 피어있는 작고 노란 꽃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납매다. 다가서자 우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어젯밤 그 향기다.
섣달에 피는 꽃이라 해서 납매(臘梅)라 한다. 납매과 납매 속, 낙엽관목으로 중국 원산이다. 화경이 3∼3.5센티로 한겨울에 피어나는 귀한 꽃이다.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손님에 비유해 ‘한객’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12월에서 2월까지 선명한 황색의 꽃을 작은 가지에 가득 피운다. 다회에 즐겨 사용하기도 하고 겨울철 꽃꽂이용으로도 환영받는다. 이 동네는 어느 정원이든 한두 그루씩 있어서 겨울철에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오두막 옆에서 묘목을 기르는 다나카씨가 아침 일찍 왔다. 나무시장에 납매를 출하하기 위해서다. 두 그루를 골라 정성껏 분을 뜬다. 크레인차가 납매를 들어올리자 아침 햇살 속에 작은 꽃들이 노랗게 빛난다. 납매 시집가는 날이다. 요즘 정원수 경기가 좋지 않아 20년생 한그루에 5천 엔이란다. 좋을 때는 만 5천 엔까지 했었다는데. 돈이야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고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애지중지 키운 녀석이니 좋은 곳에 가서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단다. 딸 시집보내는 친정아버지 마음과 다르지 않다.
유신준 작가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깊이 알고 싶어 조기퇴직하고 백수가 됐다.
지인의 소개로 다누시마루 산기슭의 오두막을 거처로 정했다.
자전거를 벗삼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납매의 모습입니다.
이사가서 뿌리를 내리서들랑 그곳에서 만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