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생님이 개인홈피가 없냐고 질문을 해온바 홈피는 없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뉴스메일에 올린 것은 있음을 보여주려고 3년전 글을 올립니다.--곽윤섭.

<b>별똥별 이야기 2001년 11월 28일 작성</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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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d5c5c face=돋움>이 글을 쓸려고 키보드에 손을 얹고 보니 제가 처음 별을 찍으러 갔던 것이 언제였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략 8~9년전쯤 된 것 같다는 생각만 나더군요. 포천 어디껜 가였는데 그 또한 정확치 않습니다.

신문사에 다니는 사람의 취재 경험에 대한 기억 치곤 너무 흐릿한 셈이라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변명은 준비되어있죠. 우선 그 당시의 취재는 실패로 끝났고 그러다 보니 지면에 반영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신문에 실리기만 하면 어떻게든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말이죠.
</font>
<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star07.jpg align=left> 두 번째 변명은 찍은 필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필름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죠? 사실은 잃어버려서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찍은 필름이 없는 탓입니다. 즉, 그 날 한 컷도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정리, 보관할 것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별똥별-공식적으로는 유성이라고도 부릅니다-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서 날짜를 알아냈습니다. 93년 8월 12일 새벽이었습니다. 그 때 밤하늘을 수놓을 유성우의 관측에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 2시 전후로 추정됐습니다. 전 포천군 어느 산중에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p> 그러나 구름이 계속 지나가고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질 정도로 기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유성은 고사하고 수많은 별자리의 별들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틀렸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서 동쪽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올 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별을 찍는 것이 참으로 고약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예 포기하면 차에 들어가 잠을 잘 수 있었겠지만 그게 안되니...

할 수없이 소주병을 앞에 두고 한잔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잔 마시고 별자리 한번 찾아보고...를 반복했습니다. 아주 약한 불빛도 사진을 망쳐버린다는 상식은 알고 있던 터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하는 고상한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날이 샜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고 저는 “날샜다”란 표현의 깊은 뜻을 새기며 쓰라린 속을 부여안고 철수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유혹이 있었습니다. 97년 12월에 시간당 수십 개의 유성우(유성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뜻으로 지어낸 이름인 것 같았습니다)예보가 있었는데 이땐 제가 벌써 알만큼 알게 된 터라 취재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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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시간당 낙하 개수를 천문용어로 ZHR이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말 그대로 천정에서의 시간당 낙하개수 Zenithal Hourly Rate를 뜻합니다. ZHR은 `밤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서 6.5 등급의 별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때, 그리고 유성우의 복사점이 천정에 위치해 있을 때 좋은 시력을 가진 이상적인 한 사람의 관측자가 목격할 수 있는 유성의 개수‘를 말합니다.</font>

예를 들어 ZHR(시간당 낙하 개수)이 60이라고 치면 1분에 하나 꼴입니다. 온 하늘 중에서 말입니다. 하늘이 얼마나 넓은 줄 아시는지요. 만약 24mm렌즈(사진을 아시는 분들은 이게 상당한 광각임을 아실 것입니다.) 로 하늘을 구획별로 나누어서 모두 커버해 보려면 아마도 수십대 이상 설치해야 할 것같군요. 정확한 계산은 아닙니다. 렌즈로 하늘을 다 덮어볼 생각은 사실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림잡아 30대라고 치면 확률은 30분의 1입니다. 물론 카메라에 찍힐 확률은 아닙니다.

<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1128st3.jpg align=right><font color=#228622 face=돋움>[사진설명-사자자리 유성우의 개념도]</font><p> 사람의 눈보다 좋은 렌즈는 없다는 속설처럼 사람이 눈으로는 볼 수 있는 유성을, 카메라는 찍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비율이 얼마쯤이 될지도 계산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계산을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일 겁니다. 매번 하늘의 조건이 다를 테니까요. 간추려 말하자면 97년에 예보된 시간당 수십 개는 사진취재의 대상으로는 “전혀 의미 없는 수치”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98년 11월엔 수천 개에서 1만개 가까운 수치가 예보되었습니다. 달도 좋아 그믐이라고 하더군요. 기상청의 예보로는 “적어도 비가 오지는 않을 듯” 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기로 했습니다.

유성우를 찍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외부적인 조건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다 말씀드리면 뉴스 메일이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서 줄입니다만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장소의 미덕은 `무조건 어두워야‘한다는 것입니다. 98년 11월 17일 저녁을 먹고 일단 일영쪽으로 갔습니다.

어떤 천문관측 동아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유성우를 관측하는 캠프를 차린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어느 정도는 어두울 것 같았습니다. 도로에서 떨어져야 하고 민가가 없고 가로등도 없어야 하며... 다 좋았는데 마당 한가운데 장작을 쌓아놓은 것이 보이더군요. 캠프화이어를 할거라나... 얼른 도망쳐 나왔습니다.

거리가 다소 멀기는 하지만 용인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유성우가 많이 쏟아진다면 배경으로 뭘 하나는 걸치고 찍어야 할 것 같았고 그 배경은 바로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의 놀이 시설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대유람차나 놀이기구의 궤도는 괜찮은 구조물이거든요.

사실 일영에 가기 전에 전화로 협조(에버랜드의 모든 조명을 꺼달라는)를 구해놓고 있었기에 현장에 도착해 보고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삼각대를 세우며 복사점을 찾으려는데 복사점 아래 하늘이 밝게 빛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p>관리실에 전화를 걸어보니 곧 야외 눈썰매장을 개장하게 되어 있어 밤마다 슬로프에 인공눈을 뿌려야 한답니다. 개장일이 촉박해 작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하는 군요. 당연하겠지만 조명을 밝혀야만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시계를 보니 예보된 극대시간까지는 두 시간정도 남았더군요. 마지막 장소로 이동을 하면 딱 맞을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습니다. 그 곳은 제일 먼저 후보지로 꼽았지만 아무 대안이 없을 때가 아니면 가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이천군 덕평의 어느 수련원입니다. 금년에도 이 곳에서 가장 큰 행사가 열렸었죠. <p>천여명이 넘는 별 동호인들이 대규모로 모여 여러 행사도 하고 축제처럼 관측을 즐기는 곳입니다. 만약 별을 찍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관측행사를 취재할 의도라면 이 곳이 적합한 곳이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덕평의 수련원으로 갔습니다. 통제에 따라 라이트를 끈 채 행사장입구로 이동하는 차들의 행렬을 보면서 ‘오늘도 별 볼일 없겠구나’라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라이트를 다 끈 채 차를 운행할 수는 있지만 브레이크등까지 끌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브레이크등의 빛 정도면 사진에는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주로 학생인 관측자들은 사진 찍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니 자유롭게 행동했습니다. <p>물론 이 정도의 행사를 알고 찾아올 수준이면 천문관측에 관한 상식이 보통은 아닌 사람들이죠. 그러나 천명이 넘는 인원은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98년 11월 그날 새벽은 분명 93년보다 훨씬 많은 유성들이 쏟아졌습니다. ZHR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해도 150에서 1000 정도였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p>그러나 주변에서 번쩍거리는 잡광(자동차빛, 후레시빛, 담배, 그 외에도 빛나는 물질은 아주 많습니다.)에 시달리며 새벽까지 버틴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그나마 같이 갔던 후배의 카메라에 딱 하나가 잡혔고 저의 필름은 전혀 별볼일 없었습니다. 한 개에서 많으면 서너 개가 찍힌 다른 신문의 사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늘 유성과 관련된 사이트를 검색하면 볼 수 있었던 1965년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때는 ZHR이 수십만개였다고 합니다.

<center><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1128st1.jpg></center><br clear=all> <font color=#228622 face=돋움><center>[사진설명-1965년 미국에서 찍은 유성우]</center></font><p> 그 외의 사진 기록은 별 다른 게 없고 그림만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저는 “1965년과 1966년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는 것은 혹 거짓이 아닐까” 라고 늘 의심을 하며 1년을 기다리다 1999년에 또 한번 헛걸음을 했습니다.<p> 그러나 99년엔 크게 실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별, 그것도 쏟아지는 별을 찍는 것이 쉬운 것이었다면 전세계적으로도 유성우사진이 이렇게 귀할 리가 없을 거 아닌가" 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2000년 8월에 또 한번 ZHR 수백 개의 예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말았고 결과도 무시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1998년 당시 천문학계에서는 앞으로 또 33년이 지날 때까지는 대규모(사진에 찍힐만한)의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게 통설이었으므로 기다릴 생각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학의 진보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사자자리 유성우의 경우 (템펠-터틀 혜성의 궤도는 지구 공전궤도와 약 17도의 각도를 이루며, 지구 공전과 반대 방향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이 혜성은 서기 902년이래 매 33년마다 근일점을 지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1월 중순 어김없이 유성우를 뿌렸고 그 가운데 특별히 화려한 유성우를 남긴 것은 1799년, 1833년, 1966년이었으므로 1999년이 그냥 지나갔다면 2032년과 2033년 정도가 아니면) 대규모는 없을 것이었는데 또 예보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국제적인 유성학회에서 하나같이 98년을 전후한 예측이 틀렸음을 지적하면서 2001년 11월 19일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의 예보는 ZHR 10만개정도까지 나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을 놓치면 2099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일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거죠.

그래서 속는 셈치고 한번 더 투자해 보기로 했습니다. 2001년 11월 19일 오전 2시부터 3시 30분 사이가 극대시간이며 전후로 30분씩을 예비시간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장소를 고르는 것이 역시 문제였습니다. <p>98년 세 개짜리가 찍혔던 곳이 소백산이라 마음이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문애호가들이 최고라고 추천하는 강원도 횡성의 태기산으로 결정했습니다.

태기산에 대한 추천의 글은 자주 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잡광이 없다는 장점도 좋았지만 단점이란 것이 더 마음에 들었거든요. 추천해주신 분의 표현으로는 “주변에 쉴 만한 곳이 전혀 없는 것이 단점”이라더군요.

그렇다면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로 갔습니다. 18일 밤 10시에 도착해 이리저리 둥지를 찾다가 11시께 삼각대를 놓고 19일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예정된 대로 달은 저녁 8시에 져버리고 없고 군부대의 불빛과 동쪽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빛이 의심스러웠지만 전반적으로는 크게 나쁘지 않은 곳이더군요.

19일 새벽 1시 30분쯤이 되자 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서두르고 싶었지만 기다렸습니다. ‘이번엔 예보가 확실하다’ 고 마음먹고 2시까지 셔터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그 30분 동안 떨어진 유성우만해도 제가 태어나 지금껏 본 모든 유성의 총 숫자보다 많았습니다. 드디어 2시. 준비한 카메라 세 대의 셔터를 개방시켰습니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center><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1128st2.jpg></center><br clear=all> <font color=#228622 face=돋움>[사진설명-2001년 사진부 장철규 기자가 일산에서 나무를 걸치고 찍은 유성]</font><p>
<center><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star06.jpg></center><br clear=all> <font color=#228622 face=돋움>[사진설명-유성우의 경로가 구름처럼 빛나는 현상인 유성흔. 약 10초동안 지속됐다]</font><p> 애초 생각으로는 노출을 10분 정도는 줄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초당 5개까지 목격이 되더군요. 그것도 제가 본 방향으로만. 그래서 1분에서 3분사이의 노출로 승부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래서 필름을 살린 셈이 되었습니다. <p> 불덩어리(화구)도 떨어지고 유성이 타고난 흔적인 유성흔도 수십번 이상 목격되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연변에서도 통하겠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여유까지 생기더군요.

일생 일대의 장관이었습니다. 2시까지 기다리느라고 마셨던 곡차의 기운을 빌어가며 새벽 4시를 넘기면서까지 여러 가지 노출과 렌즈로 유성우를 담았습니다. 간헐적으로 비명소리까지 질러가면서...<p> 저 시커먼 하늘 속으로 불줄기와 불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있으니 저절로 함성이 터지더군요. 마음 한 구석에는 ‘이게 필름에 맺혔을까’ 하는 걱정이 이어졌지만 현상을 할 때까지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p>1분을 넘기는 장시간 노출사진의 경우 디지털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굳이 그 사실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므로 디지털카메라는 들고 가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가능하다고 했더라도 필름으로만 찍었을 것입니다.

<center><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1128st4.jpg></center><br clear=all> <font color=#228622 face=돋움><center>[사진설명-유난히도 길게 오랫동안 떨어진 유성우] </center></font><p> 동쪽 하늘이 파랗게 밝아 오는 것을 보면서 장비를 정리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유성우였던지 하늘이 파랗게 변하고 있는데도 유성은 계속 날아들고 있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와 뉴스를 검색해보니 한국 천문연구원의 발표로는 소백산에서 시간당 4만개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가 태기산에서 수를 세지는 않았지만 소백산이상의 규모였을 것입니다. 여러 날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사이트를 뒤져보니 그 날의 흥분을 동참하신 분이 많았더군요. <p>그런데 이 좁은 한반도에서도 천차만별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름에 가리었다는 곳도 속출하더군요. 그게 단순한 변명이 아니란 것을 당해본 사람은 압니다. 특히 이번에도 천명이상이 몰려든 덕평으로 갔던 분들이 낭패를 당한 모양입니다.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의 별이 찍혔더군요.

저 같은 문외한들은 사진을 몇 컷 찍은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이제 곳 2001년 사자자리유성우에 대한 공식 보고서가 여러 나라에서 나올 것입니다. 예측의 정확성에 대한 평가도 따르겠죠.

사실 이번에도 ‘그냥 의미 없는 수준’으로 예보하고 있던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겨울은 별을 보기에 그렇게 좋은 계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태기산에서 포인트를 찾고 있다 마주친 모 대학 천문동아리학생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더군요.
<center><img src=//newsmail.hani.co.kr/photo/photo2/star08.jpg></center><br clear=all> <font color=#228622 face=돋움>[사진설명-19일 새벽 사자자리 유성우가 한반도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다. 템펠-터틀 혜성이 동반하는 유성체의 띠가 지구 궤도를 통과하는 33년마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날은 새벽 1시 30분부터 수가 급격히 증가해 3시를 전후해서 시간당최대2만여개가 관측되어35년만에 최대규모를 기록했다.유성우의 이름은 복사점이 놓여 있는 별자리의  이름을  따라  명명하는데 사자자리 유성우는 사자자리 이름에서 왔다.특히 이날은 불덩어리 유성이라고도 불리는 화구도 많이 목격되었으며 유성우의 경로가 일정시간동안 구름처럼 빛나는 유성흔도 수십번 이상 나타나며 밤하늘을 장식해 우주쇼를 연출했다]</font> <p>그날 틀림없이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그 밤 태기산에는 10여개정도의 팀이 유성우를 찍거나 보기 위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는데 모두 성공적인 관측이 되었을 것입니다. 파랗게 밤을 새운 그들의 정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table><tr><td bgcolor=whitesmoke><font color=navy size=2>
<center>◇후기◇</center><p> 2099년정도가 아니면 이런 우주쇼는 없다고?
천문학자들은 보다 더 정확한 예측으로 새로운 유성폭풍(페르세우스든 쌍둥이든) 을 예보할 것입니다. <p>1998년 당시 학자들이 금년의 유성우를 이런 규모로 예측해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장담하건대 2099년까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33년은 기다려야 되겠죠?<p></font></tr></table> <p> 곽윤섭 기자 <a href="mailto:kwak1027@hani.co.kr">kwak1027@hani.co.kr</a>"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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