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지난 4일 서울시 노량진동 수산시장에서 터져 나온 괴성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새벽 2시가 갓 지난 무렵 인적이 드문 길가와 대조적으로 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그곳에는 고무장갑과 장화를 착용한 채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이 가득했다.
“이맘때가 제일 바빠요. 경매가 한창이니까 준비도 계속 해야 되고…”
경매가 이뤄지는 구역을 뒤로하고 다음 차례를 대비하는 안 씨(40대‧도매업)는 작은 수첩을 들고 생선을 담은 통 위를 넘나들며 생선상태를 메모했다. 반면 한차례 경매를 끝낸 김을동(가명) 씨는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결과에 한숨지으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 블록의 경매가 끝나고 안 씨 블록의 경매가 시작됐다. 한 블록의 경매는 채 2~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경매상들이 자리를 잡고 이동식 전광판을 장착한 경매기를 탄 진행자가 목소리에 열을 냈다. 부드럽게 진행되던 경매는 종종 상품 가격에 따라 지체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경매를 돕는 강동임(가명) 씨가 가격을 부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경매상들은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그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품을 찬찬히 관찰했다. 그렇게 또 한 차례 경매는 끝이 났다.
“별 다를 거 없이 매일이 똑같지 뭐”
낙찰된 생선을 운반하는 장진형(가명) 씨는 잠시 짬을 내어 담배를 피며 이렇게 말했다.
2시간여 동안 계속된 경매가 일단락되고 노량진 수산물시장 초입에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섰다. “시장은 이제야 하루를 시작한다”며 허리를 펴던 횟집 주인은 손님을 맞으며 밝게 웃었다.
새벽 5시, 어느덧 그곳에도 해가 뜨고 있었다.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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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호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풍경을 찍었다. 수산물 경매가 가장 큰 이벤트에 해당한다. 이런 취재는 정말 어렵다. 촬영 허가를 받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표현을 조금 틀어보자면 난이도가 꽤 높은 소재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사진에서 보였다.
기승전결의 구조로 만드는 포토스토리가 아니란 것이 중요하다. 경매 현장이 궁극적으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긴 하지만 그외의 나머지 풍경들이 어울리면서 뒤를 받쳐주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포트폴리오 제작에서 1번 사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번 사진은 시각적으로 강렬하여야 하며 또 뒤를 따라올 나머지 9장에 대한 얼굴의 역할도 해야한다. 소설의 첫문장처럼, 신문의 1면 헤드라인처럼 작용해야 한다. 호기심을 유발한다면 더 좋겠다.
임경호의 작업에서 첫 번째 사진은 멀리서 찍은 수산시장의 전경이다. 횟집의 전등과 간판이 보이고 실루엣으로 몇 사람이 보인다. 수산시장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바닥엔 물이 흐르고 있다. 전등, 간판, 작업복 실루엣, 그리고 바닥의 물은 수산시장의 상징이다. 최종 10장을 고르기 전, 처음에 수 백장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아래의 사진A1, A2 같은 대안들이 있었다. 각각 노량진, 혹은 수산시장이라는 글자가 보이므로 이곳에 어디인지에 대한 장소정보가 쉽게 다가온다. 그래서 첫번째 사진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서 뭘 본다는 것은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에 의존하는 것은 쉬워서 곤란하다. 한 번 쓱 보고 지나가게 되면 사진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 '수산시장'이라는 한글을 예로 들어보자. 한글 '수산시장'은 한글로 쓰여졌지만 한자어다. 물에서 생산되는 품목들이 거래되는 곳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권 사람들의 약속이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산시장'은 아무 뜻도 없는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나 중국어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사진은 만국공통어다. 그 핵심은 상징이다. 물론 문화권에 따라서 같은 대상도 다르게 읽힐 수는 있다. 그렇지만 언어에 비하자면 훨씬 가독성이 높다. 전등과 간판과 작업복과 바닥에 고인 물을 보면서 수산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이미지이며 사진이다. 그리고 더 강력하게 다가서고 오랫동안 기억나게 만든다. 문자 '수산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수산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과정은 이미지를 보고 수산시장을 떠올리는 과정에 비해 결속력이 약하다. 좋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의 구분은 사실상 이 관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위의 1번 사진이 A1, A2에 비해 더 좋았다. 두번째로 이야기 할 것은 크기의 문제다. 대체로 보자면 큰 것이 더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위의 1번 사진은 세로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전등, 간판, 실루엣, 물은 전체 사진크기의 1/4정도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암흑이다. 공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작기 때문에 더 주목받기도 하고 어둠 속에 빛이 있으므로 전체 10장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새벽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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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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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첫 사진 설명을 너무 길게 했다. 두번째 사진은 숫자가 하나 보이고 철망이 있으며 뒤로 사람이 보인다. 슬슬 수산시장의 안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이 숫자 9는 뭔지 모른다. 몰라야 하는 것이다. 다만 추측할 수는 있게 만든다. 3번 사진에선 사람이 보이고 4번에선 생선이 보인다. 물을 뿌리고 사람들의 관계가 보이는 식으로 사진이 이어진다. 7번 같은 사진이 하나 정도 더 있었으면 좋았다. 상인이 들고 있는 생선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여러 설명을 하게 되며 다른 사진과 비교해서 튄다. 이야기의 강약 조절을 하는 컷이다. 포트폴리오에서 디테일의 등장이 중요한 법인데 그게 아쉽다는 뜻이다. 8번은 경매시장에서 빼놓을 수없는 핵심 사진이다. 사람들의 손짓이 아주 재미있게 다가온다. 9번사진도 좋다. 상자를 건너가는 동작이다. 사진은 정지화면이지만 움직임이 있는 사람의 동작은 사진을 움직이게 만든다. 마무리는 담배로 했다. 임경호가 묘사하려는 수산시장의 새벽 경매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다. 역시 상징이다. 시장사진은 어렵다. 그래서 첨에 말했듯이 난이도가 높은 테마를 잡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잘 했다고 할 수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