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의 들판 가운데로 느린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기차 안에서 마주 앉은 대학생들이 시국을 논하는 모습이며, 채취한 봄나물 보따리를 끌어안고 5일장에 나가시는 할머니들의 고단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누군가는 곧 도착하게 될 고향역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차창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고, 아빠 따라 먼 길 나선 아이들은 좁은 통로로 다니는 이동매점 카트를 눈으로 따라갑니다. 어느 시골 간이역에서는 대처로 나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애기아빠를 기다리는 젊은 아낙네의 애타는 장면도 빠뜨릴 수 없겠지요. 등에 업힌 아기는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구요.

   이러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역사(驛舍)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전라선을 달리던 기차가 남원을 떠나 전주로 향할 때 처음 멈추던 남원시 사매면의 서도역입니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이에요. 이 소설 덕분에 유명해진 서도역사는 단선이던 전라선의 복선 개량과정에서 새 역사가 인근으로 옮겨질 때 옛 건물이 철로 일부와 함께 보존되었습니다. 남겨진 역의 건물은 서도역이 처음 개설된 1930년대 초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개항 시기를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명장면들이 여기에서 촬영되기도 하였습니다.

   고즈넉했던 서도역은 지금 늙은 벚나무의 만개한 꽃으로 말미암아 먼 과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상의 마력을 잃고 있습니다. 젊은 연인들이 벚꽃 아래에서 추억을 담기 위해 분주히 오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신들의 사진 속에 구동매의 애신 아씨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마음 그 애절한 눈빛을 얹혀놓을 것 같습니다. 혹시 한적하거든 서도역사 앞의 낡은 의자에 앉아 이 지역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상상력을 끌어올려 보세요. 그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아쉬움을 실은 기차가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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