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말 개성이 넘치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이라고 이모티콘이 있던데 제가 그걸 할줄 몰라서...

사실 이 사진의 실체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그후에 의견을 묻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었겠으나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를 알게되면 공연한 선입관을 가지게 될까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은 저 아래 517번 사진을 올리신분에 대한 저의 댓글에 붙어있는 사진의 작가인 마이너 화이트의 작품입니다. “벗겨진 페인트”란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그는 사진사의 흐름에서 한 줄기를 차지하는 중요한 작가였습니다.
제가 사진을 올려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물어본 것은 사진감상에 대한 저와 여러분의 안목을 조율하고자 함이라고 밝혔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자면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글을 올린 13분의 의견이 모두 개성이 넘치고 저마다 주장이 뚜렷한 소신에서 우러난 의견들이었음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사진의 대가인 아무개의 것이라고 소개하고 시작했으면 그 이름에 눌려서 자유로운 의견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올린 사진에 대해 댓글을 달 때 여러분 한명한명 모두가 고수이자 대가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본다면 무게에 눌리고 부담스러워서 자유롭게 평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진을 첨 배우는 초등학생의 작품이다” 라고 생각하고 제 직관과 경험에 비추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야 마음에서 우러난 생각들이 전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사진감상법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사진에 대해 평했듯 그렇게 솔직하게 서로서로의 사진들에 대한 생각들을 올려주십시오. 그것이 기분나쁘다고 느껴지실 분은 여기엔 안계실듯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 사진을 사진을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이 찍었다고 하는 것과 마이너 화이트가 찍었다고 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봅시다. 제 생각으론 초등학생도 카메라를 들고 이것 저것 누르다가 우연히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그냥 지나칠 만한 소재를 즉물적으로 찍을 확률은 초등학생이 더 높겠지요. 그리고 우연히 찍었다고는 하지만 의도는 있습니다. “신기해 보이니까 찍었다” 는 의도는 존재하겠지요.
그런데 마이너 화이트의 다른 사진들을 쭉 보게 되면 이제 얘기가 달라질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들엔 일관된 흐름이 확실히 있습니다. 뭐 사실 너무 당연한 얘긴가요?
초등학생이라면 그의 다른 사진들에 이런 일관성은 없었겠죠.
마이너 화이트는 의도적으로 노출의 기준을 밝은곳에 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에서처럼 어두운 곳이 심하게 어둡게 되어 clockwiz 님의 의견처럼 “강렬한 흑백대비”의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죠. 그 대비를 통해 liyuc 님의 의견처럼 “시커멓게 멍들었어도 또 속을 보면 전혀 다른 꿈을 가진 아이” 같은 기분도 들게한 것입니다.
화이트의 의도는 “신기하게 보이게 할려고 이 사진을 찍었다” 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군요. 결국 이 차이가 초등학생과 마이너 화이트의 차이인 듯하고 여러분들의 사진발전을 위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던 “찍는 사람의 의도”입니다. 빛과 조리개와 셔터, 심도, 구성, 앵글, 색감, 질감등은 모두 그 의도를 살려내기 위한 방법들입니다.
결론: "나는 무엇을 왜 찍고 싶은가?"를 고민하자.

아래의 글은 마이너화이트의 사진을 평해놓은 이영욱 교수의 글을 추린 글이랍니다. 화이트의 사진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분을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해 퍼왔습니다. 원문을 보실분은 www.zoomin.co.kr/webzine/zn_webzine_view.asp?TMC=106,113,134&nSeq=2041 로 들어가면 됩니다.
화이트의 사진의 특징 중 하나는 스트레이트 사진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즉물적 형상이 렌즈라든가 인위적인 왜곡이 없이 초현실적 시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시각을 생산하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종적인 인화상태에서 세부적인 디테일을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기묘한 형상으로 보이게, 소위 말하는 낯설게 하기의 수법으로 착화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사실 전통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의 계보에 있으면서도 이를 벗어난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히려 1950년대 유럽의 주관주의 사진의 스타일과 같은 정신성을 취하고 있다.
화이트의 풍경사진은 안셀 애담스와는 달리 어디서나 쉽사리 발견되는 평범한 소재 들이다. 그런데 그의 풍경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광선의 대담한 처리에 있다. 수면에 비치는 반사광과 검은 바위와 그 그림자의 노출치는 크게 벌어진다.
즉, 한쪽은 너무 밝고 또 한쪽은 반대로 아주 어둡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양쪽을 모두 살릴 수 있는 평균치의 노출을 잰다. 물론 반드시 이러한 방법이 셰도우와 하이라이트를 전부 다 살려줄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노출에 따른 현상 방법에 대한 적절한 적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화이트는 밝은 부분에 적정노출을 주어서, 중간 밝기의 피사체와 어두운 톤은 더욱 검게 뚝 떨어진다.

수면에 반사되는 흰 파도와 하이라이트는 적정으로 묘사되지만 입체적인 바위덩어리는 노출부족이 되어서 평면적으로 검은 패턴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사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체험하는 사실적인 세계가 아니라 비현실적이며, 한층 신비로운 분이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진가의 정신은 사물의 존재와 뒤섞여 일체가 되며, 사물들 또한 진정 신비적인 감성의 혼합과 분출에 따라 정신이 된다.
즉 “물질인 것 같은 것이 정신인 것 같아 보인다.”- 화이트의 말
글/ 이영욱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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