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체
물매화
병아리풀꽃
자주쓴풀
여뀌
가을이 완연하다.
세상사에 시달려 살다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한 달이 어떻게 가는지 잊고 살아갈 때가 있다.
가을햇살이 좋아 무작정 아내와 밖으로 나왔다.
잠시 가을햇살을 쬐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가을햇살에 끌려 강원도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진귀한 가을꽃들을 만났던 그곳을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이럴때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보다 추억에 대한 기억력을 가지고 찾아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그래, 그곳을 찾았다. 큰 도로에서 호젓한 길로 접어들자, '맞아, 이 길이었어!'하고 몸이 먼저 느낀다.
10월이 시작되는 날엔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로 시작되는 '시월의 어느 멋진날에'를 부르고,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로 시작되는 '잊혀진 계절'을 부른다. 그러나 그것도 점차 나이가 들면서 잊혀져 간다. 언제부턴가, 그날이 그날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들꽃을 만나고서야 오늘이 시월의 첫날임을 알았다.
이미, 그곳의 가을은 한참 전에 시작되었고, 이제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음은 이미 시들어가는 꽃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얼마만일까, 그들을 담으러 달려온 것이....참, 오래되었다. 오늘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온 것이 아니라, 그냥 가을햇살에 끌려나온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담겨주질 않는다.
그들이라고 모를까? 자기들 사랑하는 마음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미안했다.
카메라로 세상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날이었다. 시월의 첫날, 그날이 내게 '시월의 어느 멋진날'이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