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전주시의 변두리 제법 넓은 들판 한 가운데에 우리 마을이 자리잡았고 그 옆으로 삼천천이 흘러갔습니다. 삼천천 제방에는 단 한그루의 왕버들나무가 위풍당당하게 마을과 시냇물을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아마도 이 나무는, 임진왜란 중에 마을 농부들이 자신의 그늘 아래에 모여서 의병장을 따라 전쟁터로 나간 자제들 걱정하는 대화를 나눌 때, 그 애타는 심정을 나이테에 새겨놓았을 것입니다.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정읍에서 봉기한 농민군들이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쑥고개를 넘어와 이 나무 아래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논의하면서 흘린 이야기 그러니까 청나라와 일본군의 심상치 않은 동태를 걱정하는 이야기도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온 마을 사람들이 만세를 외칠 때 덩달아 들썩였을 것이고, 6.25전쟁 때 포탄 터지는 소리로 부들부들 떨었겠지요. 어린 개구쟁이들이 여름철 나무 아래서 물장구치는 모습이며, 가뭄에 농부들이 말라가는 시냇물 바라보면서 농사 망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다 지켜보았습니다.

   세상이 크게 바뀌어 벼가 자라던 들판이 아파트 숲으로 변하였고, 풀이 무성하던 제방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습니다. 고목 주위에 벚나무와 은행나무들이 가로수로 들어섰고, 가로등은 밤을 밝히며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렸고요. 이 낯선 환경에서 고목은 시름시름 세력을 잃더니 결국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서 나무의 풍성했던 잔가지들이 떨어져나가자 고목의 옛 위용도 줄어들었습니다.

   지난 여름 뒤늦게나마 이 고목을 추억하면서 카메라로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앞으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를 기록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도 하였지요. 그런데 어느 가을날 저녁 무렵 천변을 산책하는데 뭔가 허전했습니다. 그 나무가 사라진 것이에요. 관청에서 잘라버렸나 봅니다. 아마도 외지에서 들어온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흉물스럽다고 민원을 제기하였을 것입니다. 이제와 누구를 탓할 수 없기에 고목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 그 밑둥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과 삼천천을 지켜주며 사람들에게 위로의 장소를 마련해주었던 그 고목의 사라짐에 애도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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