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는 사진가 발굴, 한국 근현대 기록 '눈'

사진마을 2018. 11. 06
조회수 1483 추천수 1

[사진전문출판 30년 이규상 눈빛 대표]


문학에 꽂혀 대학도 문창과를 다녔다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 말을 따랐다

 

조세희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 감명’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쓸모를 봤다

 

첫 책 크리스 마커  ‘북녘 사람들’

최근까지도 유럽 등에서 주문

 

이경모-성두경-정범태-김천길 등

해방-6·25-4·19-5·16 격변기 ‘증언’

 

“한 권 내 팔리면 그 돈으로 다음 책”

30년간 700종 펴내며 뚜벅뚜벅

 

“미학, 사진비평, 사진사, 사진인문 등

자생적 한국 사진이론서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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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문출판사 눈빛(대표 이규상)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페이스 22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전과 북페어가 열리며 이번 기념전에는 그동안 눈빛이 출간한 사진책 중 절판된 것을 빼고 남아있는 450종 전부와 눈빛을 거쳐간 구와바라 시세이, 정태원, 권주훈, 엄상빈, 전민조, 장숙, 변순철 등 사진가들의 원판 사진, 그리고 눈빛에서 수집해온 아카이브 사진 중 미군정기에 외국인이 찍은 코다크롬 컬러 10점도 전시된다. 또한 눈빛의 30년을 정리한 책 ‘지금까지의 사진-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이규상 엮음)이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 이규상 대표는 “내가 운영해온 출판사는 30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출간한 사진집은 한국현대사진과 맞물려있다. 이경모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은 1991년에 펴냈지만 사진촬영 시점이 1945년부터였다. 출판사 30년을 돌이켜보니 말 그래도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맥락 부여해 세상에 소개하는 보람"
  한국 근현대사의 장면마다 한국의 사진가가 있었다. 책에서 이 대표는 “열아홉의 청년 사진가 이경모(1926~2001)가 해방이 된 당일인 1945년 8월 15일 오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 광양에 내려와 있던 노산 이은상도 참석한 광양경찰서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장면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진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라고 썼다. 성낙인은 다음날인 16일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조선건국동맹의 건준 위원장 여운형의 대중연설회를 촬영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6.25전쟁, 4.19, 5.16 등 한국사의 변혁기마다 사진가들이 자리를 지켜왔다. 성두경(1915~1986)이 6.25전쟁기 동족상잔의 비극에 휩쓸린 서울에 있었고 4.19의 전날인 4월 18일 정치깡패가 고려대생들을 때려눕힌 현장에 사진기자 정범태가 있었으며 5.16과 동베를린간첩단 사건 재판정에 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사진들이 눈빛에서 사진책으로 엮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집안 형편상 매달은 아니고 신년호 잡지는 사줬다. 두 세달 동안 책이 닳도록 봤다. 새소년, 소년동아 이런 거였다. 중학교 때는 누님이 용돈을 줘서 학원 잡지 같은 것을 구독할 수 있었다. 문학으로 관심이 옮겨지면서 문학사상을 거의 100권까지 봤다. 중학생치고는 약간의 겉멋이 있었다. 70년대 작가 김주영, 김원일, 조 해일…. 대학도 문예창작과로 가게 되었다. 이 대표는 책 ‘지금까지의 사진’ 감사의 말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를 출판의 길로 이끌어 주신 최인훈, 오규원, 이기웅 선생께 감사 드린다. 그분들이 꽂아 준 목표를 향해 나는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왔다” 창작도 중요하지만 출판도 중요하다는 선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출판 쪽으로 걷게 되었고 1985년에 열화당에 들어갔다. 미술서적을 많이 내던 그곳에서 서서히 시각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황영성 같은 서양화가의 카탈로그, 민중미술도 봤다. 그리고 조세희의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가 있었다. 사진이 뭔가 우리 삶에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 사진이 음풍농월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그렇지 않고 삶의 어둠을 조명하는 사진도 있다는 것을 봤다. 당시 강운구 선생은 주말에 경주 남산을 찍고 있었는데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황남빵을 사와서 편집부에 나눠주곤 했다.


 이 대표는 “출판이 재미있었다. 흩어진 사진을 모아 정리하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에 맥락을 부여해 사진가로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 보람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문공부 장관을 지낸 윤주영이 사진집 ‘내가 만난 사람들’을 열화당에서 내게 될 때 조선일보 편집인이 써온 서문을 뜯어고쳤다. “천편일률 찬사로만 가는 것이 싫었다. 나는 젊었고 패기가 있었다. 사장에게도 할 말을 했다.” 그러다 열화당을 나오게 되었다. 몇 달 지나 예비군훈련을 받고 왔는데 유학 갔다가 막 귀국한 미술평론가 정진국의 연락이 와있었다. “사진전문출판사 하나 같이 하자” 여균동, 이영준이 합류했고 거름출판사 유대기 사장이 후원했다. 1988년 11월에 출판등록을 했다. 이듬해 2월에 눈빛의 첫 책 ‘북녘 사람들’(크리스 마커)이 나왔다. 2008년에 저자의 동의를 얻어 개정판을 재출간한 한국어판이 현재 남아있는 크리스 마커의 유일한 북한관계 사진집이 되었다. 그의 명성에 힘입어 최근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 책 주문이 종종 들어온다. 초기 눈빛의 멤버들은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갔고 1989년 거름출판사에서 분리독립한 눈빛에 이규상이 대표로 취임했다. 초기부터 굵직한 책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작가 방송사 대담프로 출연해 대박
  이 대표는 “앞으로 쓰일 한국현대사진사는 발굴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이 대표는 “눈빛의 역할은 검증된 사람의 책을 내기보다는 이름없이 묻혀있는 사진가와 사진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러 소식통이 있고 대담이 있고 책이 있다. 그 중에서도 최인진 선생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셨다”라고 했다. 여순사건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nb0001.jpg » 5일 눈빛출판사에서 자리를 함께 한 이규상 대표(왼쪽)와 안미숙 편집장. . 이경모는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광주고보 시절인 1944년에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문에서 입선도 했고 천경자와 2인전을 가진 이력이 있다. 1946년에 지금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 사진부장으로 취임해 보도사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해방, 여수순천사건, 6.25 전쟁까지 ‘격동기의 현장’을 찍었다. 그런데 50년대 중반부터는 보도사진에서 차츰 멀어졌다. 여순사건 사진 들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했다. 당신이 찍은 보도사진은 단순한 기록일 뿐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도 한국사진계에선 보도사진을 단순한 자료사진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경모는 사진 공개에 회의적이었다가 최인진, 한국일보의 고명진, 그리고 눈빛출판사의 이규상이 다각도로 설득하자 허락했다. 다행히도 이경모가 현장은 떠났지만 예전 필름은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1989년 12월에 ‘격동기의 현장’이 나왔다. 그전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던 여순 사건 등의 사진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여러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KBS 대담프로 ‘11시에 만납시다’에 이경모가 출연하게 되어 눈빛책이 전국 방송망을 탔다. 사진집 사상 초유의 6쇄를 기록했다. 이경모도 본인 사진의 가치가 다시 평가받게 된 것에 기뻐했고 고마워했다.


 사진가 김보섭이 “친구 아버님이 사진관을 했는데 사진이 좋다더라”라고 해서 가보니 과연 1950년대에 이미 실험적인 사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발굴한 것이 김명철의 ‘아름다운 소풍’으로 나왔다. 유족들이 필름이나 사진을 소중하게 보관한 경우가 많다. ‘청주사람들의 삼호사진관 추억’은 며느님이 시아버지 김동근의 사진을 소중하게 여겨 보관하고 있다가 책으로 나온 사례다. 
  

  이 대표는 “엊그제 최민식 선생 자제분의 전화가 왔다. ‘휴먼 15집’용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최 선생이 생전에 ‘베토벤이 교향곡을 14번까지 냈는데 나는 휴먼 15집까지는 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제분의 전화가 너무 반가웠다. 여전히 최 선생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 ‘인화가 안 좋다. 내용이 거기서 거기다. 거지만 찍었다. 몰래 찍고 도망 다녔다’ 어떻게 이런 평가를 내릴 수가 있는가? 최 선생의 작업은 재평가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1992년에 눈빛은 한국에서 최초로 존 버저의 책을 소개했다. ‘제7의 인간’이 그것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다뤘다. “우리가 좀 앞서 나갔다”
 

  30년간 사진분야로 국한된 전문출판을 해왔으니 고비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30년간 700여 종의 책이 나왔는데 한 권 할 때마다 힘들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이엠에프 등 굵직한 금융위기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 우리가 사옥을 세운 것도 아니고 사세를 키운 것도 아니다. 내가 별다른 취미도 없어 골프장에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권 만들어 팔리면 그 돈으로 또 다음 책을 내는데 썼다. 대형출판사와 비교할 수 없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동안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책을 더 잘 만들었어야 하는 후회가 자주 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출판을 이렇게 못해왔을 것 같다. 다행히도 자식들이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들이 지금 파리 7대학에서 출판학을 전공하고 있다. 동양사람은 혼자라고 하더라. 눈빛을 이어가게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이 대표는 “사진출판은 크게 세 가지다. 이론서, 기술서, 사진집. 초기 필름카메라 시절엔 기술서도 몇 번 했는데 우리는 아무래도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더 맞는 모양이다. 기술서는 다른 출판사에서 할 일이라 생각하고 사진집에 주력해온 것이 한 10여 년 되었다. 앞으로는 이론서 비중을 좀 높이려고 한다. 자생적인 한국의 사진이론을 기다리고 있다. 미학, 사진비평, 사진사, 사진인문 등이 모두 이론서의 분야다. 쉬운 언어, 우리의 언어로 된 한국의 사진이론이 나와야 한다.”라고 했다.


'판단하기 전에 기록하라'
   순수 사진집 외에 기억나는 책이 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2006년에 20세기민중구술 열전 시리즈를 시작했다. 총 49권이 나왔다. 영남대 박현수 교수가 단장이었고 민중생활사연구단과 젊은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이후 인류학의 민족지 개념을 사진과 출판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많이 배웠다. ‘판단하기 전에 기록하라’라는 것이 인류학하는 분들의 학문하는 자세다. 우리는 연역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분들은 참여관찰, 현장조사였다. 가치판단 없이 기록하고 정리하는 시스템으로 학문을 한다. 평가하지 말고 사람들이 살아온 여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절대 연구자의 가치체계를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남의 삶에 개입하지 말고 자기 가치관으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먼저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나중에 ‘창신동 이야기’. 최근에 나온 ‘빈곤의 미-구룡마을을 중심으로’ 같은 책을 낼 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또 그는 “사진계가 아니라 사회학 하시는 분들, 역사, 인류학 하시는 분들이 눈빛의 가치를 알아보더라. 여러 사례가 있는데 예를 들어 2005년 6월에 나온 ‘그들이 본 한국전쟁, 항미원조-중국인민지원군’을 두고 정근식 교수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주 주체적인 관점으로 사진편집을 해서 책을 냈다는 평가를 하더라. 김동춘 교수도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기 쉬운데 거기서 벗어난 것이 눈빛의 책이다. 전쟁의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성찰을 하고 있는 것이 눈빛에서 나오기 시작했다고 높이 평가하더라. 그의 후학들도 논문을 하면서 우리 책들을 많이 인용한다. 그런 점은 아주 뿌듯한 일이다”라고 했다.
 

  책 ‘지금까지의 사진’ 감사의 말에서 이 대표는 “스페이스22 정진호 대표와 이은숙 실장 그리고 아트디렉터 윤승준 형은 창립 30주년 기념 북페어 전시를 1년 전부터 예약해주어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이 책을 쓸 수 있었다.”라고 고마워했고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우리 출판사의 사진책을 사주고 기다려준 독자 여러분께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


 눈빛출판사 창립 30주년 기념전 강연 일정

11월 10일(토)
14:00-15;30
대항매체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
(김성민, 경주대 교수)
16:00-17:30
내가 바라본 격동한국 반세기
(구와바라 시세이, 일본 사진가/통역 이상미, 서이갤러리 대표)
 
11월 17일(토)
14:00-15;30
눈빛과 한국현대사진 30년
(진동선, 사진평론가)
16:00-17:30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사진의 지평
-눈빛사진가선을 중심으로
(이광수, 사진평론가, 부산외대 교수)
 
이외 사진가(엄상빈, 정태원, 전민조) 토크쇼가 2회(11월 13, 15일 오후 16:00-18:00)
있을 예정이며, 지난 9월 7일 뉴욕에서 타계한 전 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 선생 추모행사가 11월 15일 행사장에서 열린다. 
스페이스 22 (02-3469-0822)
눈빛출판사 (02-336-2167)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눈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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