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을 찍어도 작가 사진인가?

사진마을 2018. 10. 15
조회수 4336 추천수 1

육명심 작가 '이산가족' 출간

1983년 한국 뒤흔들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담아

삼분의 이가 TV정지화면 촬영


육명심 작가의 책 ‘이산가족’이 나왔다. (열화당, 6만 원) 판형(220x300mm)이 작지 않고 양장본인데다가 192쪽에 이른다. 흑백사진 83점이 들어있으며 그 중 56장이 텔레비전의 화면을 찍은 것이다. 책에는 맹문재 시인의 글 ‘이산가족의 만인보’가 들어있어 육명심 작가의 사진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출판사 쪽에서 말하고 있다. 맹문재 시인의 글은 1983년 시작되었던 한국방송공사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캠페인의 의미를 학술적,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캠페인의 가치도 높이고 육명심 작가 책의 가치도 높이려고 시도한다. 사진 사이사yms001.jpg » 책표지이에 김준태 시인의 ‘판문점’, 박봉우 시인의 ‘분단에서’, 문익환 시인의 ‘마지막 시’를 배치하여 사진과 글의 유기적 결합을 모색함과 동시에 투박해 보이는 사진의 나열을 부드럽게 풀어나가려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출판사의 보도자료에서 이 책을 ‘사진집’이라고 부르고 있고 ‘육명심’이란 이름이 책 표지에 실려있으나 과연 이것이 ‘사진가 육명심의 사진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짚어봐야 한다. 책의 3분의 2가 넘는 56장의 사진은 텔레비전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카메라로 텔레비전을 찍을 때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주사선이 겹치거나 번지지 않게 하려면 셔터 속도를 너무 빠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빼고 나면 더 이상의 기법이 필요 없고 (창작적) 가치도  없다. 이 화면들은 한국방송공사에서 일한 사람들, 즉 텔레비전 영상 카메라맨과 피디 등이 제작한 것이다. 이 화면을 카메라로 그대로 찍어서 필름이나 디지털로 담는다고 해서 카메라를 든 사람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당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본) 전국의 시청자들이 다 같이 본 화면을 개인 사진가의 몫으로 주장한다면 곤란하다. 서점에서 (비닐껍데기를 씌우지 않은) 사진집을 열어 거기에 있는 사진을 내 카메라에 옮긴다고 해서 내 사진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는 방송국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면 당시 여의도 KBS 앞 이곳저곳에 들불처럼 펼쳐진 벽보와 메모판과 현수막을 찍었어야 했고 실제로 육명심 작가의 이 책엔 그렇게 여의도 이곳저곳에서 실제 찍은 27장의 사진도 들어있다.
   이 책 ‘이산가족’의 대표 저자를 ‘한국방송공사’라고 했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이 책을 사진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쾌한 답이 없다. 지금 당장에라도 텔레비전 화면을 찍어서 사진집을 수 백 권, 수 천 권 낼 수가 있겠다. 브라운관텔레비전과 달리 QLED, OLED 화면은 화질도 대단히 뛰어나서 그냥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집을 내 줄 출판사만 구할 수 있다면.

yms01.jpg » 책 68쪽 yms02.jpg » 책 69쪽 yms03.jpg » 책 111쪽 yms04.jpg » 책 77~78쪽
 
   책을 낸 열화당 쪽과 통화를 했다. 열화당 쪽에서는 “2018년 봄 무렵에 육명심 선생님 쪽에서 원고를 보내와 출간을 타진했다. 육 선생님의 제자 되시는 분이 사진을 정리해서 들고 왔다. 그 전에 전화 통화에서 ‘많은 사진이 텔레비전’이라고 해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제 보니 단순한 텔레비전의 정지 화면이었다. 실제 여의도 광장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담한 크기의 자료집 형태의 출간을 권했는데 육 선생님 쪽에서 ‘마지막 사진집이 될지도 모른다’며 제대로 된 사진집 형태를 원했다. 몇 번 교섭이 있고 끝내 지금 형태의 책이 되었다. 텔레비전 정지화면 사진의 한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출판사 쪽에서도 고민이 있었다. 개입하려 했으나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한국방송공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니 저작권이 한국방송공사에 있지 않겠는가, 한국방송공사의 양해를 구했는가? 책 표지에 육명심의 이름과 더불어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 화면 촬영이라는 크레딧을 달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했다. 열화당 쪽에서는 “미처 생각을 못한 부분이다. 확인해보겠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열화당 쪽에서는 “가제본 상태에서 저자 쪽과 의견교환을 하면서 종이질도 자료집에 걸맞게 하자고 했으나 관철되지 않았고 그나마 표지 사진에 얼굴을 직접 보여주자는 육명심 선생님 쪽의 주장에 따르지 않고 하반신만 넣는 것으로 절충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서 힘들었다”라고 답했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텔레비전 촬영화면을 출판사에 들고와서 책을 내자고 하면 내줄 것인가?”라고 물었다. 열화당 쪽에선 “어떤 작가를 볼 때 전체적, 총체적 평가를 하여 책 출간을 결정하는 것이다. 육 선생님은 이번 책을 ‘백민’시리즈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이번 책을 내는 것이 육 선생님의 명성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결국 대부분 저자 쪽의 의견대로 나갔다.”고 답했다.
 
   이 책 끝 부분에는 저자인 육명심 작가의 ‘작가의 말’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맨 끝 부분이 다음과 같다.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사진들은 어찌 보면 텔레비전 화면의 단순한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이것이 과연 예술적 표현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또 무어라 답해야 할까. 예술의 역사에서 새로운 조류의 탄생은 그 시대의 필연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팝아트가 산업사회의 산물이듯,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영상 문화가 일상화된 생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예술의 새로운 소산이다. 내가 텔레비전을 카메라로 찍는 시도를 했던 것도 1980년대 초, 이와 비슷한 시기다. 다만 표현의 방식이 조금 달랐던 것뿐이다. (…) 1980년대 당시 나의 사진적 시도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발현되었으며, 그런 시대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의 하나로 봐 주었으면 한다.”
 
  ‘작가의 말’은 아리 그뤼에르의 ‘티브이샷(TV Shots)’을 떠오르게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촬영감독을 하다가 70년대 초반에 사진가로 변신한 아리 그뤼에르가 초기에 했던 진지한 작업 결과물 중의 하나가 ‘티브이샷’으로 시트콤, 뉴스, 광고, 뮌헨 올림픽 중계 등을 방영하는 텔레비전 정지화면을 본인의 작업이라 하여 발표했다. 일대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는 명백한 패러디였고 텔레비전문화에 대한 모욕적인 공격이자 동시에 보도사진의 전통적 관습에 대한 급진적인 도전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티브이샷’을 본인이 해왔던 것 중에서 가장 저널리즘사진에 가까운 작업으로 생각했다. 거의 10년이 지난 1982년에 그가 매그넘에 입회할 때 다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어떻게 받아들여져 매그넘 회원이 되었다. 아리 그뤼에르는 훗날 “(나를 반대한) 그들은 흑백사진의 전통에 따라 작업을 했으며 사회적인 이슈를 다뤄왔기 때문에 나를 반대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나의 텔레비전 화면 촬영(티브이 샷)도 사회적 이슈다. 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게 먹혔는지는 알 수 없긴 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티브이샷’은 내가 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70년대 초반 런던에서 살 때 나의 집에는 이상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안테나와 조절기를 비트는 것을 통해 나는 갑작스럽게 매혹적인 색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작업이) 거리 사진가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이미지란 잘 통제된 어떤 기회의 문제이며 당신이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고 집중했을 때 떠오르는 작은 기적 같은 것이다. 내가 60년대 말 뉴욕에서 팝아트를 발견했을 때 나는 우리가 소비사회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찰력과 유머감각과 더불어 말이다. 나는 라우센버그, 리히텐스타인, 백남준 같은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존경심을 느꼈다”라고 맞섰다.
  2008년 매그넘총회 취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아리 그뤼에르를 직접 만나서 짧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티브이샷’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살짝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젊었을 때 한 번 해본 것이지 그 후론 (텔레비전 정지화면을 찍는 것은)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리 그뤼에르의 ‘티브이샷’은 막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려던 그가 기존의 사진계에 던지는 ‘도장깨기’ 같은 성격의 실험이었다. 그가 했던 주장, ‘저널리즘에 가장 가까운 작업’이란 표현은 “사진가가 현장에 있었으니 찍었던 것 아니냐, 나도 텔레비전 앞에서 현장을 목격했으니 거리사진가이자 저널리스트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리 그뤼에르가 70년대 초반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BBC가 중계하는 뮌헨올림픽을 찍었던 것과 10년이 지나 80년대 초반에 육명심 작가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국방송공사가 중계하는 정지화면의 ‘이산가족’을 찍은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아리 그뤼에르는 어떤 실험이었고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 ‘이산가족’에 실린 텔레비전 정지화면 56장은 여의도광장에서 실제로 찍은 사진 27장과 나란히 배치되어 전통적인 저널리즘이나 거리사진인양 치부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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