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

사진마을 2018. 08. 03
조회수 1520 추천수 1

sl11.jpg » 뉴욕 이스트 57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울 레이터, 2010. 마지트 어브 촬영
흐릿한 물체, 유리나 거울을 통해 겹겹이 발생하는 반영과 투영 속의 거리, 마네킹처럼 보이는 사람, 회화에서 잘라내온 듯한 풍경,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극적인 구성, 비현실적인 원근법, 때로는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한 순간. 이런 특징을 가진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한국어판이 나왔다. (도서출판 윌북, 2만 원)

사울 레이터(1923~2013)는 미국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그를 라비로 키우고 싶어했다. 1946년에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유진 스미스의 조언에 따라 사진도 찍기 시작했고 당시의 주류 사진계에선 아무도y.jpg »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거들떠보지 않던 컬러사진을 이미 1948년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컬러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윌리엄 이글스턴이 1965년이 되어서야 실험적으로 컬러를 시도하게 되는 것과 비교하면 사울 레이터의 컬러사진이 얼마나 혁신적으로 앞선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울 레이터는 그 무렵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에서 살았고 사진을 찍었으나 패션잡지에 실리는 상업사진에 주력했을 뿐 사진집을 낼 생각을 않았다. 사진을 시작한 지 60년 만인 2006년에 독일의 출판사 ‘슈타이들’의 대표가 뉴욕에 왔다가 사울의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첫 사진집 <초기 컬러작품>(원제: Early Color)이 나오게 되었고 뒤늦게 세상 사람들이 사울 레이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비비안 마이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비비안 마이어는 보모로 일하면서 1950년대부터 40년간 뉴욕을 찍었지만 현상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후손도 없이 세상을 마감했는데 2007년에 한 사업가가 동네의 벼룩시장에서 필름 무더기를 싼 값에 구입해 현상했다가 놀라운 사진들이 쏟아지자 사진집과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알렸고 당시 세계 사진계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알려진 사진가다.  


그러나 사울 레이터는 사진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그 전시대와 동시대의 그 누구와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1992년에 큐레이터 제인 리빙스턴이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뉴욕을 찍은 사진가들을 자의적으로 묶어 <뉴욕 사진학파 1936~1963> 이란 사진집을 펴내면서 사울 레이터의 사진도 포함시켰기 때문에 다이앤 아버스, 리차드 아베돈, 브루스 데이빗슨,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헬렌 레빗 등과 함께 ‘뉴욕사진학파’로 불리게 되지만 정작 본인은 단호히 부정했다. 2009년 한 잡지 인터뷰에서 사울 레이터는 “나는 단 한 번도 무슨 유파나 무슨 주의에 가담한 적이 없다. 단지 로버트 프랭크의 작품에 감탄할 뿐이며 다이앤 아버스는 길 맞은 편에 살았기 때문에 알고 지냈다. 그녀의 전기를 보면 내가 그녀의 빨래를 도와줬다는데 글쎄 그게 정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sl02.jpg » 카르멘, 하퍼스 바자, 1960. 7쪽 sl03.jpg » 눈, 1960. 45쪽 sl04.jpg » 캐노피, 1958. 59쪽 sl05.jpg » 판자 틈으로, 1957. 97쪽 

sl101.jpg » 무제, 1952. 128쪽  

sl08.jpg » 자동차, 1960. 161쪽 sl100.jpg » 제이, 사진인화 1950. 그림 1990. 231쪽


sl10.jpg » 사울 레이터의 스튜디오. 뉴욕. 270쪽


이 책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엔 그가 찍고 그린 패션, 컬러, 흑백사진부터 그가 그린 회화작품까지 230점이 골고루 들어있다. 또한 그가 남긴 어록도 새길만하다. 


“내 사진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공간에서 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사람들이 미를 추구하기 위해 저 멀리 떨어진 동화의 나라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선 어리석음, 비참함, 무례함…. 이런 것들이야말로 숙독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2009년 인터뷰) 사울 라이터는 그가 40년대부터 평생 뉴욕에 살았으니 뉴욕을 찍었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그는 빛보다 비, 눈, 안개, 거울, 유리창을 좋아했다. “나는 유명한 사람의 사진보다 빗방울로 덮인 유리창이 더 흥미롭다.”(책 44쪽) “사진이 중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지만 사실, 사진은 미완성 세계의 작은 파편이자 기념품이다.”(책 96쪽), “많은 사진가들이 컬러사진을 얕보거나 가볍고 얄팍한 것으로 여길 때에도 나는 컬러사진을 좋아했다.”(책 176쪽)어떻게 찍는지에 대한 답이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며 돌아다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다”(책 48쪽), “나에게 (사진과 관련된)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2009년 인터뷰), “레이터의 현상 조수가 지쳐서 말한 적이 있다. ‘우산은 이제 그만 하세요!’ 그말에 레이터는 간단히 대꾸했다. ‘나는 우산이 정말 좋아!’(책 108쪽)

이런 한 마디들이 사진과 사진 사이에서 콕콕 심금을 울리고 찌르며 그의 사진을 다시 보게 한다.  


사울 레이터가 살아있고 한국에 왔다면 내가 던졌을만한 질문과 답이 200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하여 옮긴다. 오역이 있다면 전적으로 기자의 잘못이다. 원문링크 
 


 Q: 당신의 사진은 부드러우면서도 불협화음을 보여준다. 당신이 셔터를 누를 때 그러한 것들을 인식하는가? 아니면 도시의 시각적 자극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인가?
 A: 나는 내 사진이 불협화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당신은 뉴욕의 도시건축공학보다는 뉴욕 사람들의 특성을 일깨우는데 더 관심이 많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동의하는가?
 A: 나는 사람들을 찍을 때 그들이 뉴욕 사람이라거나 또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 찍지 않는다. 나는 철학이 없다. 나는 카메라가 있다.
 
 Q: 당신의 사진 중에는 공간적으로 압축된 것들이 많다. 망원렌즈를 선호하는가?
 A: 나는 여러 상황에 따라 여러 렌즈를 쓴다. 망원렌즈 좋아하는데 기본은 표준이다. 나는 어떨 때는 150밀리 렌즈를 쓴다. 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 어떨 때는 내가 선호하는 렌즈로 작업하고 싶지만 그게 없으면 그냥 손에 있는 렌즈로 찍는다. 피카소가 그렇게 말했다지? “녹색 물감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둘러보니 녹색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빨간색 물감으로 그렸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타입이 아니다. 혼란의 느낌이야말로 바람직한 재료다.
 
 Q: 당신의 사진들 중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 나서 영화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묻지만 이것은 당신이 의식적으로 추구한 효과인가?
 A: 나는 일을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일이 벌어지는 데로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게 나의 기준이다. 내 사진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해 말을 해보자면……. 나는 영화역사상 초기의 유명작들에서 나온 스틸사진을 모아놓은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들이 내 사진에 영향을 준 것 같다.
 
 Q: 당신은 예측할 수 없는 효과를 위해 종종 유효기간이 지난 컬러필름으로 찍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디지털이미지의 시대다. 자발성과 놀라움의 일부가 사진에서 사라진 것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는지? 
 A: 현대의 디지털 사진술을 과소평가할 일이 없다. 나는 현재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나이가 들어서 힘이 딸린다. (웃음)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과거가 현재보다 나았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게 사실인지 나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세상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진 않다.
 
 Q: 당신 사진은 세로가 많다. 왜 세로를 선호하는지 말해줄 수 있는지? 세로가 가로보다 더 관객을 시선을 끄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A: 그냥 나를 ‘미스터 세로사진’이라고 불러줘. 세로사진은 가로보다 더 가벼운 시각적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판화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본 판화 모음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일본의 예술에 관한 책도 많이 본다.
 
 Q: 당신은 당신의 컬러 작업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이유가 있나?
 A: 글쎄 언젠가 나는 사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또 가끔 나는 누군가에게 내 작품을 보내겠다고 제의도 했는데 그 사람들이 내 작품을 받아보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야. 나는 또 언젠가는 전시에 내 작품을 걸겠다는 제의도 받았는데 내가 그 제안서 봉투를 열어보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작가로서 경력을 잘 쌓아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돌이켜 보면 마틴 해리슨( ‘초기 컬러 작업’ <원제: Early Color>편집자)가 내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게 하였다. 신세를 많이 졌다. 제인 리빙스톤은 나를 ‘뉴욕학교’라는 책에 포함시켰다. 마틴이 독일의 스타이들출판사로 하여금 나의 초기 컬러작품들을 책으로 내게끔 설득했다. 그게 꽤 호응이 있었다.
 
 Q: 당신은 새로 얻게 된 명성에 익숙해졌나?
 A: 나는 자화자찬에 몰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비발디나 일본 음악을 들을 때나, 새벽 세시에 스파게티를 만들다가 적합한 소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유명세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나르시시즘에 재능이 없다. 돌려 말하자면 거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다. 하하하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윌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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