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사진마을 2018.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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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중 작가의 개인전 <erased INERASABLE>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거울 강남구 강남대로 강남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6월 28일까지. (일요일은 휴관)
작가 본인의 작가노트가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도움이 없이도 사진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진에다 뭘 덧붙인다는 것은 윤색을 넘어 호도가 될 수 있어서 말을 아낄까 한다. 다만 이 작업들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는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말이나 나의 글에 구애받지 말고 전시장에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가장 효율적이란 구태의연한 조언을 빼먹을 순 없다.
 
 보다시피 차효중 작가의 작업은 모호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흔들었거나 흔들렸거나 혹은 정확하지 않은 초점을 일부러 원했다면 이 모두는 작가의 의도다. 의도가 없이 무슨 예술이 존재할 것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매체술인 사진의 탄생과 더불어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의도를 불어넣기에 혼신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단단하기 짝이 없는 이 사진이란 신기술은 도대체 뚫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여서 애를 태우고들 있다. 합성하거나 변형하거나 렌즈에 크림을 발라서 의도를 보여줬더니 사진이 아니라고들 아우성을 친다. 이게 사진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찍는 순간 그 이후부터 전혀 손을 대지 않는 고리타분한 정통 다큐멘터리부터 사진에 솜이나 모래를 붙이고 뿌리거나 아예 입체적인 형상을 가진 설치작업까지 사진의 스펙트럼은 넓게 존재한다. 혹자는 한쪽 끝의 것을 사진으로 부르지 않기도 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많은 사진가들이 암중모색하고 있다.
 
 암중모색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 없으나 방향은 이야기할 수 있다. 사진 안에 무엇인가 남겨두어야 생각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 읽어낼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오만이요 위선이다. 그런 점에서 차효중 작가의 이번 전시는 충분히 근거가 있고 방향성도 있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뭔가 떠올랐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웹상에서 사진을 보고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고 전시장에 가서 이 작품을 보고 난 다음에 이야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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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를 전문 옮긴다.


  <작가노트>
기억은 시간과 함께 퇴색하였고 종국에는 망각을 상징하는 레테(Lethe)의 샘물을 마시고 나의 의식에서 지워졌다. 그러나 부서지고 침전되어 지워질 수 없는 흔적으로 남겨진 것은 지워진 기억과 지워지지 않은 망각 사이의 어느 경계에서 아직도 위험하게 머물고 있다. 기억과 망각의 간극은 현전과 부재의 상호 얽힘의 공간인 파르마콘(Pharmakon)일 수도 있다.
 그 공간에 보전되어 있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있다.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감각상징으로 머물다가 어떤 연유로 인해 표출되면서 상반된 (부)존재의 편차로 인해 불안전하였다.
미몽 속에서 미몽을 꾸듯이 나의 감각은 흔들리고 정지하고 흐릿하고 분명하고 모호하고 예민하다.
 
이번 전시의 내용은 두 가지로 구성되었다.
지워진다는 것은 이제는 사실을 구성할 수 있는 단서가 아무것도 의식기억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존재는 하였다는 감각적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길에서 도시에서 타인에게서 우연히 조우하고는 다시 감각된 표상들이다.
지우기 위한 아름답고 처절한 행위도 있다. 어느 종교의 신비주의(SEMA) 의식이 그럴 것이고. 무아지경에 도달하기 위한 몰입의 몸짓도 그런 행위이다. 자신을 지워서 미망에 이르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돌면서 춤을 추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지워질 수 없는 전제가 있는 지워진 것이 있다. 지워진다는 전제가 있는 지워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다만 나의 한계 밖의 일이다.

                                                                                                                 <차효중>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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