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림에서 바스끼야를 찾았다

사진마을 2018.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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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y1.jpg »  지난 21일 성남시 상대원1동 개나리공원에서 권오향 이사장(뒷줄 왼쪽)이 숲놀이를 나온 상대원어린이집 어린이들과 어르신들과 함께 숲놀이의 한 과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이들이 입은 티셔츠는 우지호(7ㆍ아랫줄 맨 왼쪽)군과 함성옥(85ㆍ아랫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씨 등이 그린 그림을 권 이사장이 디자인해서 만들어졌다.


29년 경력의 의류 패션전문가 권오향씨는 지난해 성남의 대표적 복지단체 중 하나인 ‘(사)참사람들’의 무급 이사장이 됐다. 그는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기부금이나 지자체의 예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작은 규모나마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 복지활동에 보태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21일 성남 중원구 상대원3동복지관에서 권 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상대원3동복지관은 판교종합사회복지관과 더불어 ‘(사)참사람들’이 성남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복지관이다.

 어떻게 수익을 내겠다는 것인지 물었다. 권 이사장은 티셔츠를 팔아 그 수익을 복지활동에 쓴다고 했다. 그는 “복지단체의 이사장이 되었지만 내가 복지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현장에는 오랫동안 복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으니 내가 복지를 논할 입장이 아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복지관의) 그 분들이 하고 있는 일을 살짝 거들 뿐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권 이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재능을 복지에 접목시킬 길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복지관의 어린이집에 들렀는데 ‘가족’을 주제로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어떤 그림에서 미국의 천재적인 낙서화가였던 장 미셸 바스키아의 느낌이 떠올랐다. “이 그림을 디자인해서 티셔츠를 만들어 어린이집의 야외활동에 필요한 단체복을 만들어주자”라고 생각했다. 즉각 실행에 옮겨 견본을 만들어 복지관 관계자들에게 보여줬는데 팀장이 “그렇지 않아도 (참사람들)법인의 복지 기금 마련을 위해 클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냥 옷을 나눠줄 것이 아니라 옷을 판매하면 어떻겠는가?”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권 이사장은 이 발상을 단발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복지관 안에서 연결되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상대원3동복지관에서 아이들 그림을 확보했으니 다른 한 곳인 판교복지관에선 어르신들의 그림을 찾아봤다. 인지재활치료 미술시간에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그 중 두 점을 골랐다. 잘 그린 그림을 고른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스토리를 만들기 좋은 그림을 택했다. 물론 그림이 그대로 옷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29년 패션 경력자인 자신의 손길을 살짝 보탰다. 그것은 실 한 올이 될 수도 있고 반짝이 하나가 될 수도 있는데 마법을 부린 듯 그림이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권 이사장은 아이와 어르신의 그림이 단순히 디자인 재료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복지는 사회적 이슈다.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좋아지게 만든다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직접 만들고 그린 그림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해낸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단순히 기부를 위해 돈을 내고 티셔츠를 살 순 있지만 그런 옷을 실제로 입고 다니기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다행히 내가 디자인을 한다. 우리가 만든 옷을 사는 것은 기부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멋진 그래픽 티셔츠를 하나 입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림을 그린 당사자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기본이다. 이 옷들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기만 해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사회적 풍경이 된다. 옷을 입은 사람과 그 옷을 보는 사람들이 옷을 통해 여섯 살 아이와 여든다섯 살 어르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opy.jpg » 아이들과 어르신의 그림을 권 이사장이 살짝 손길을 보태서 만들어진 티셔츠.
 다음 디자인도 준비하고 있는지 물었다. 권 이사장은 “상대원3동복지관의 인지재활치료 미술시간에 나온 어르신의 작품들에서 오스트리아의 천재적 화가였던 에곤 실레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또 다른 디자인은 미국 화가이자 조각가 크리스 루스의 패키지 디자인에 들어있는 아프리카풍의 도안에서 영감을 받았다. 복지관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그림에서 그 느낌을 찾아낼 수 있다. 디자인을 하려면 복잡해선 안된다. 바스끼야의 그림은 낙서다. 마치 아이들이 한 것 같은 분위기다. 에곤 실레도 완성도가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서 나오는 색과 곡선의 조합이 특징적인데 어쩐지 앞으로 뭘 더 그려넣어야 할 것 같은 여운이 있다. 이게 핵심이다. 아이나 어르신은 순수한 마음에서 쉽고 단순하게 그리니까 디자인으로 승화할 수 있는 감이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는 티셔츠 외에 에코가방, 야구모자, 스카프 등 일상에서 몸에 걸칠 수 있는 뭐든지 만들어서 팔려고 한다. 수익금 전액은 복지단체 기금으로 쓰겠다”라고 답했다.
 오는 26일 낮 12시부터 판교종합사회복지관 야외광장에서 사랑나눔 바자회가 열린다. 아이와 어르신이 그렸고 권 이사장이 디자인한 이 옷들이 판매될 것이다. 바자회가 끝나고 나면 SNS를 통한 클라우드 펀딩으로 옷을 팔 계획이며 지난해 권 이사장이 복지 사단법인의 예산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만든 온라인 SPA브랜드 ‘엘리시움 테라’의 사이트를 통해서도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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