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지형 지키기 18년

사진마을 2018.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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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s04.jpg » 지난 달 30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우체국에서 고주서씨가 자신이 18년 동안 찍어온 한반도지형 사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에는 한국을 쏙 빼닮은 한반도지형이 있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형태도 닮았거니와 삼면이 바다인 한국의 지형과 똑같이 강물이 한반도 지형을 휘감아 돌고 있다. 지자체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이 아니라 완전히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18년 동안 이곳의 한반도지형을 찍어온 사진작가 고주서(63)씨가 강원도 영월군 영월우체국 1층 공중실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영월 한반도지형 사진전’을 열고 있다. 30일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영월우체국에서 고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고씨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과 북의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다는 뉴스를 보고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실제 출근하다시피 거의 매일 한반도지형을 오르내리고 있다. 아침 9시 30분쯤 도착하여 오후 4시 30분에 내려온다. 그 사이에 한반도지형을 찾는 관광객이 오면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관광객은 주말에 더 많으니 휴일도 없다. 18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땐 필름카메라여서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줬다. 한반도지형을 알리려는 마음에서 단 한 번도 사진 값을 받은 적이 없다. 몇 년 전부터 디지털카메라가 하나 생겨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주곤 했다. 조금 편해졌다. 고씨는 “내가 컴맹이라 자판을 치는 것이 느리다”라고 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반도지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일요일 밤에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한 번은 새벽 4시까지 이메일을 보내고 씻으려고 욕조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져 양쪽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힘줄이 끊어졌다. 이후 6개월 동안은 깁스를 하고 다니면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고씨가 이곳 한반도 지형 앞에서 찍어준 사람은 어림잡아 50만 명 쯤 된다고 한다.
 부산에서 신혼여행 온 부부에겐 28장을 뽑아주었다. 프랑스,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도 많이 이곳을 찾는다. 인상 깊은 관광객도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희귀병이 걸린 6학년 남자 학생이 잘 걷지 못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부축하여 한반도지형 앞으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이의 할머니가 “우리 손자가 너무 좋아한다”라면서 돈을 주길래 당연히 안 받았다. 그랬더니 1년이 지나 감 한 상자를 보내왔더라. 사진을 또 우편으로 보내줬다. 그 학생에게 희망을 줬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고씨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서 사진을 보여줬다. 지난해 가을에 한반도지형 앞에 나무 덱이 만들어졌다. 그 후론 단체로 온 분들에게 태극기를 들게 하여 찍어주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영월군 담당자에게 건의를 했으나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고씨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한 눈에도 덱 위에 서면 한반도지형이 기념사진에서 안 보이게 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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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s02.jpg » 지난해 가을 한반도지형 앞에 설치된 덱. 단체 관광객이 여기 서면 배경으로 보이던 한반도지형이 가려서 안 보이게 된다.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돈도 안될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을 할까? 고씨는 “한국인이니까”라고 짧게 말했다. 고씨의 영월 사랑, 한반도지형 사랑은 오래되었다. 영월 토박이인 고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좋아했다. 공고를 나와 생각지 않았던 대학에 가서 고시 공부를 했다. 독서광이어서 하루에도 한 두 권씩 읽어나가 1년이면 몇 백 권을 보곤 했다. 어느날 사진을 찍으러 나갔는데 책과 다른 점이 있었다. 책은 피상적인데 사진은 현장이 있었다. 바람 한 줄기, 풀 한 포기가 나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사진에 뛰어들었다. “뭐든지 대충하는 성격이 못되어서” 완전히 매달렸다. 고씨는 “처음에는 5일장을 다니면서 할머니들이 추위 속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뭘 팔려는 간절한 모습을 봤다. 한 25년간 장터의 삶을 찍었다. 영월 지역의 단종제, 정선아리랑제 같은 축제도 지켜봤는데 요즘은 이벤트회사가 장악해 지역 특성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축제가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영월 단종제 국장 재현 행렬을 보는데 옛날 옷을 입었으나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등장하더라.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고씨가 영월 지역 지키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은 동강댐 건설 논란이었다. 1998년과 1999년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동강 일대를 사진으로 찍었다. “댐을 짓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2년 동강을 찍고 언론사에서 필요로 하는 동강 사진을 제공하곤 했다. 2000년 들어 동강댐 건설계획은 백지화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이번엔 영월군이 한반도지형을 관통하는 관광도로를 낸다는 계획이 들려왔다.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도 억울한데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통일 한반도지형을 훼손할 수 없다. 막아야 한다” 고씨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부리나케 카메라와 필름을 들고 한반도지형으로 갔다. 주변에서 고씨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생업도 없이 날마다 한반도지형만 찍는 고씨를 가족들이 격려해주었다. 부인은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당시 살아계셨던 고씨의 부친도 고씨가 “영월 한반도지형 도로공사를 막겠다. 부끄러운 한국인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자 “네가 한국인이다. 지금은 욕을 먹을지 모르지만 나중엔 절대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떳떳한 일이니 해라”라고 격려해주셨다.     자비로 한반도지형 사진 8만 장을 인화해서 서울과 강릉, 영월 등의 버스터미널에 배포하고 운전기사들에게 나눠주었다. 고씨는 결혼을 늦게 했다. 2001년 12월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 식을 올리면서 동시에 한반도지형 사진전시도 열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2002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사진전을 열 수 있었다. 여기서 여야의원 100여 명에게 한반도지형의 중요성을 알렸다. 의원들이 적극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영월군에서 한반도지형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포기하고 노선을 다른 쪽으로 틀게 되었다. 영월군에서 고씨를 좋게 보지 않았을 것 같았다. 고씨는 “당시에 나는 이상한 취급을 받았다. 몇 년 전에 군청 관계자가 ‘당시에 도로건설을 잘 막았다’라고 털어놓더라. 이 작은 동네에서 꽤 애를 먹었다. 이제 지난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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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s06.jpg » 영월우체국 1층에 걸린 고주서 작가의 작품들.
 고씨의 한반도지형 사랑은 탄력을 받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의 사진작가들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대에 무궁화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이제 해마다 7월 정도가 되면 백단심, 홍단심이 피어난다. 전시장 한쪽 벽에 고씨는 당시 후원하거나 직접 묘목을 같이 심은 사람들의 명단을 붙여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다. 한 번 심어놓은 나무의 관리는 오롯이 고씨의 몫이었다. 해마다 전지작업을 하고 퇴비를 구해 나무 주위에 묻기도 하고 암반이 많은 특성 때문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묘목이 많아 흙을 덮어주는 작업도 했다. 그 덕인지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병충해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고씨는 희망사항을 말했다. 이 사진전이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면 좋겠고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에 몇 장이라도 좋으니 한반도지형 사진을 전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의 등 뒤로 통일된 한반도지형이 걸려있으면 대단히 근사할 것이다” 고씨는 기꺼이 본인의 필름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작품사진 고주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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