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 사진전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
1994년 집배원 최동호씨 열흘의 기록
» <우편집배원 최씨> 눈빛
조성기씨의 사진전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이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반도카메라갤러리에서 열린다. 문의(02 2263 0405)
조성기씨는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와 같은 학교의 대학원에서 영상을 전공했고 충남대학교 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영상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육군정보통신학교 교수부 교관으로 재직 중이다. 1993년 대구 기아자동차 갤러리에서 개인전 ‘군인’을 시작으로 2002년 ‘팔공산의 불(佛)’ 등 1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17년에 눈빛에서 사진집 ‘우편집배원 최씨>를 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걸리는 40점의 사진은 조성기씨가 대학에 재학중이던 1994년 8월 초에 경남 함양군 마천우체국 우편집배원 최동호씨와 동행하며 열흘간 촬영한 것에서 추려낸 것이다. 촬영된 지 24년 만에 제대로 된 전시장에서 일반 관객과 조우하게 될 이 사진을 가장 반갑게 맞이할 사람은 사진의 주인공인 최동호씨다. 촬영한 해인 1994년 정년 퇴임한 최씨는 막상 자신의 사진을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었다. 사진가 조성기씨에 따르면 올해 84살인 최씨는 오는 20일 전시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1994년 조성기씨는 우연히 우체국잡지에서 정년을 앞둔 지리산 산골마을의 집배원 이야길 보고 무작정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함양군 우체국까지 최동호씨를 찾아갔다고 한다. 학생 신분으로 퇴임을 앞둔 집배원을 찍고 싶다는 요청을 하였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며칠의 간격을 두고 재차 최씨를 설득했고 끝내 촬영 허락을 받아냈다. 최씨는 열흘간 조씨에게 작은 방 하나를 내어주고 집밥까지 제공하며 사진 작업에 도움을 주었다. 조씨는 작업노트를 통해 “편지만이 유일한 외부의 소식을 전해 주던 그 시절 지리산 일대에서 그는 한없이 반가운 존재였다. 42년 동안 집배원 생활을 하면서 우편배달 외에도 각종 공과금을 대신 납부해 주는 일을 비롯, 돈을 찾아오고 송금하는 일과 각종 민원서류 발급까지 대행해 주는 ‘이동민원실’ 역할을 한 지도 오래였다. 또한 산골마을 주민들의 종자, 약품 구입 등의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우편업무 못지않게 많아, 마을 사람들은 우편물이 없어도 집배원 최동호 씨를 기다렸다”라고 회상했다.
이번 전시에 걸리는 사진을 미리 받아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유진 스미스의 ‘시골 의사(The Country Doctor)였다. 1948년 당대 최고 인기 화보 잡지였던 <라이프>지의 의뢰를 받아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로키산맥 골짜기의 산골마을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를 찍은 이 작업은 현대적 개념의 포토저널리즘에서 최초의 포토스토리 혹은 포토에세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려 50년이나 세월의 간극이 있는 유진 스미스의 작업과 조성기의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을 맞대어 비교하자는 것은 작가의 지명도나 내용을 같은 수준에서 보자는 것이 아니다. 조씨가 지리산 자락에서 보낸 시간은 열흘이었다. 유진 스미스가 콜로라도 크렘링에서 공중보건의를 찍은 것은 23일이었다고 한다. 열흘이나 23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어떤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포토스토리를 찍는다면 사실상 1년도 짧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매체의 취재 의뢰를 받아서 하는 작업이라면 23일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매달 마감을 하는 월간 매체를 위해 23일은 긴 호흡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성기씨의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을 찍은 열흘은 대학교 4학년 졸업반 학생이 투자한 시간으로는 짧다고 볼 수가 없다.
포토스토리를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흐름이라고 단정한다면 ‘시골의사’나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 모두 어떤 결론을 끌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열흘이나 23일 사이에 그 사람의 인생에 큰 굴곡을 그을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단한 위기나 전환, 대단원이 아니라 잔잔한 에피소드의 묘사에서 강약을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유진 스미스의 ‘시골의사’를 현대적 포토스토리의 비조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관점에서 비롯된다. 매체를 전제로 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짧은 결론이라도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 <라이프>지에 실린 유진 스미스의 '시골의사'
‘시골의사’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도,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에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극적인 에피소드나 사진이 나와야 하므로 연출의 기운 혹은 카메라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 사진 안을 떠도는 것이다. ‘시골의사’에 등장하는 의사 어니스트 세리아니(Dr. Ernest Ceriani)는 종종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진 스미스가 이후 만든 다른 포토스토리(혹은 에세이)에서도 설정된 것 같은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조성기씨의 ‘집배원과 산골 사람들’은 정년을 앞두었다는 국면의 큰 흐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퇴임하는 집배원 최씨에게 과도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진 않는다. 차분하게 40여 년 산골 집배원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다. 최씨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열흘이나 큰 카메라가 자신을 따라다니는데 굳어있을 수밖에 없다. 굳은 덕분에 역설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조성기씨의) 카메라에 노출되고 있음을 의식하는 표정인 것도 사실이다. 열흘이 짧고 23일이 짧다고 말하는 이유다. 전몽각 선생이 큰딸 윤미씨를 20년 넘게 찍으니 비로소 윤미씨는 카메라를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김기찬 선생이 골목 안 풍경을 30년 넘게 찍으니 골목 안 사람들이 김기찬 선생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열흘 동안 해낸 작업의 한계가 보이지만 이 정도면 사진 전공 4학년 학생의 작업으로는 대단한 수준이고 열흘 동안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년 만에 전시장에 걸려 일반 관객을 맞이하게 된 ‘집배원 최씨와 산골 사람들’은 그 시절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면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데 방점이 있다. 그 시절 산골의 자연과 산골에 살던 사람과 살림살이를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정보도 있고 의미도 있다.
추가: 조성기 작가가 사진을 보내왔다. 지난 주말에 사진 속 주인공 집배원 최동호씨가 가족과 함께 전시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전시장에 걸린 본인의 사진을 보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