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사진이 살아났다

사진마을 2017. 09. 12
조회수 6049 추천수 0

1985년 41일간 1200km 도보여행

친구 권유로 묵은 필름 5천장 꺼내

32년 만에 첫 사진집 낸 장명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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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h04.jpg » <달빛 아리랑> 중에서, 장명확


32년 전인 1985년 9월 1일 한 청년이 표준렌즈가 달린 카메라 두 대를 메고 대구에서 출발했다. 그는 고령, 남원, 광주, 화순, 여수, 마산, 부산, 밀양을 거쳐 다시 대구에 도착하기 41일 동안 하루 30km씩 총 1200km를 오로지 발로 걸어서 다니며 이 땅과 사람들을 찍었다.  그는 스스로 ‘사진쟁이’라고 부르는 장명확(56)씨다. 32년 만인 지난달 30일에 그 사진들을 묶어 사진집 <달빛 아리랑(도서출판 시간여행)>으로 만들어냈다. 사진집 출간에 맞춰 서울 인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같은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다. 지난 7일 전시장을 찾아가 장씨를 만났다.

 
 궁금했다. 32년 전 도대체 그는 왜 걸었을까? 장씨는 어린 시절 두 번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누이처럼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생 막내 고모가 자살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또 한 번은 고2 수학여행 때였다. 설악산 비룡폭포 앞에서 점심시간까지 자유시간을 받은 빡빡머리 학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어떤 청년이 폭포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뛰어내린 것이다. “그런데 내 손엔 올림푸스 하프사이즈카메라가 있었고 나는 투신 장면을 3컷 찍었다. 수학여행은 엉망이 되었지만 일정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2주일인가 지나서 그때 찍은 사진을 3장 인화해서 학교에 들고 갔다. 학교가 또 한 번 난리가 났고 난 ‘죽일 놈’이 되었다. 다들 충격에서 벗어나려던 참이었는데 사진으로 다시 한번 기억을 상기시킨 셈이었다. 사실 나도 심하게 놀란 사람이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이다. 어쨌든 어린 마음에도 ‘사진이 찍혀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때 사진이란 게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수미산이란 화두를 받았다. 화두란 것은 말의 의미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마음으로 풀었어야 했는데…. 젊은 시절엔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만 했다. 인간은 왜 영원할 수 없는가? 나는 어떻게 되는가? 그러다가 입대했고 제대 후 도보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뭔가 답을 찾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 이 땅의 사람들을 만나고도 싶었다”라고 답했다. jmh001.jpg » 장명확 사진집 <달빛 아리랑>
 연속해서 41일을 걷는 것이 간단치는 않았을 것이다. “막상 걸으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예상치 못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가왔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었지만 더 심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하루에 열 마디로 못하는 날도 있었다. 태풍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시골길에 사람 하나 없었다. 당시만 해도 허름한 옷차림에 카메라를 들었으니 간첩으로 오인하여 신고를 하는 일이 잦았다. 미리 준비한게 있었다. 아는 경찰관에게 사진 도보여행의 취지를 말했더니 선뜻 이해를 하고선 남부경찰서장의 직인이 들어간 종이 신분증을 만들어주더라. 코팅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 사람은 정직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신분을 보장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얼마나 걸을지는 계산에 들어있었지만 해가 넘어갈 무렵 그 길에 민가가 있을지는 미처 알 수가 없었다. 다리 밑이나 개울가에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텐트치고 잤다. 운 좋게 이장집을 찾을 수 있는 날이면 외양간이나 동네 빈집에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어느 마을에선 이상한 사람이 있어 어느날 빈집에서 자는데 새벽에 누가 낫을 들고 나타나 ‘마귀를 죽이러 왔다’고 난리를 쳐서 혼비백산했다.”
  사진집에 등장하는 80년대 말 남도의 사람들은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순박한 표정들이다. “저는 간첩도 아니고 건강한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땅을 알고 싶어서 걷습니다. 사진을 찍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을 붙이는 장씨의 카메라 앞에서 시골 촌노들이 웃음을 터뜨렸을 법도 하다. 
 그나저나 마음속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장씨는 이렇게 말했다. “답은 없었다. 저 멀리 대구가 보이던 41일째 마지막날 마침 가랑비가 내리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씻어주었지만 답답했던 마음이 씻겨 내려가진 않았다. 결국 마지막은 나였다. 내가 내 속에 갇혀 있었다. 나도 참 바보였다. 내가 이걸 알기 위해 스스로 고행을 했구나”

jmh002.jpg » 전시장에서 사진을 설명하는 장명확씨
  복학해 대학을 마친 장씨는 1988년부터 여러 매체에서 사진기자로 일했고 그 사이에 사진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까지 마쳤다. 그런데 또 한 번 삶과 죽음의 문제와 충돌해야 했다. 결혼 3년 만에 아들과 딸이 태어났는데 부인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큰 애가 3살, 작은 애는 젖먹이였다. “또 한번 내 인생이 뒤집어졌다.” 생활고도 겹쳤다. 장씨는 “2000년대 초반, 애들 키우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던 무렵 불교 쪽으로 발길이 가더라. 향내음과 풍경소리가 나를 끌었다. 불교방송에서 나오는 ‘불교와 문화’ 잡지의 사진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10년 넘게 사찰을 찍고 있다. 몇 년 전 기준으로 한국엔 1025개의 전통사찰이 있는데 그 정도는 다 가봤다. 30년 넘은 일주문은 한 200군데 찍었고 마애불상군 사진도 오랫동안 찍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올해 초에 시몽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던진 한 마디 때문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너 30년 전에 걸으면서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지? 그 사진이 살아날 것 같아. 너의 사진에는 살려고 하는 숙주가 있다. 니가 찍고 창고에 처박아둔 사진이지만 세상에 나오고 싶어할 것이야”라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갤러리에서 사진전을 하라고 부추겼다. 장씨는 친구의 ‘숙주론’에 머리칼이 곤두서면서 마음이 동했고 30년 묵은 필름 5000컷에서 고르고 골라 30점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전시가 임박할 무렵 일이 틀어져서 친구의 카페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수가 없게 되었다. 이왕 준비한 거라서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불교문화재단, 출판사 ‘은행나무’와 ‘시간여행’의 도움도 받아서 갤러리나우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첫 사진집도 내게 되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도서출판 시간여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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