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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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옥 작가는 사진가이자 시인이다pr02.jpg

향수전국사진공모전 금상
창원전국사진공모전 금상 등 다수의 작품이 입상 되었으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삽량문학회 편집장으로 디지털사진과 시로 결합된
디카시를 지역신문에 연재중이다
 
저서로는 강미옥 디카시집 <2017. 기억의 그늘>(눈빛출판사)이 있다
 
■ 디카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이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5행 이내의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샘에 디카시가 문학용어 명사로 등재]
 
블러그 : 강미옥 시인의 사진이야기
http://blog.daum.net/meokk2/745
 
매주 연재 합니다
 
자연과 사람의 만남
통도사와 암자 이야기
자연 속에서 감성 찾기
 
세가지 주제를 돌아가면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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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옥

2017.07.10 06:49:12

[산타바바라의 파도]

 

 

인생이 한 파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힘을 쏟아 소리치곤 밀려왔다 스르르 물러가는 파도...

바다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호흡이 아닐까.

파도는 한 겹씩 밀려와 똑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닐 것이다.

 

갈매기도 똑 같은 말만을 하지 않을 게다.

비 오는 마산 앞 바다를 바라본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파도는 거칠지도 세차지도 않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보며 문득 이성철(李性澈)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생사(生死)란 바다의 파도와 같은 거야.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났다가 깨어졌다가 하듯 우리도 그렇게 났다가 죽었다가 하지.

그래도 바다는 줄지 않아. 인간의 삶과 죽음도 이와 같은 거야.’

 

내가 없으면 이 세상 자체가 무의미할 듯한데,

죽은 후에도 지극히 평온하다는 것,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묘하다.

인생이 한 겹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태평양 연안의 미항(美港) 산타바바라에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재미 수필가 하정아 씨의 특별한 배려로 나태주 시인과 함께 가게 되었다.

캘리포니아는 사막지역이어서 일년 내내 비를 구경하기가 어려운 곳인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태평양은 침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휴양도시 산타바바라는 포근한 날씨와 절경을 가진 항구이다.

마산처럼 섬과 산과 만()으로 된 아기자기한 풍광과 선()은 없었지만

태평양을 배경으로 야자수 숲으로 뒤덮인 항구는

시원스런 풍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관이 수려하여 노년을 보내고 싶어하는 동경처(憧憬處)이며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한다.

 

L·A 방문 중에 산타바바라와 대면하게 된 것은

수필가 하정아. 성영라 두 분이 아름다운 곳에 가서,

일 년만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나는 재미수필가협회가 주최한 수필캠프의 강사로 초청돼 두 분을 만났고,

짧은 시간이지만 수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여로에 지친 몸을 풀고 산타바바라의 품에 안겨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해변으로 모래밭이 펼쳐지고,

바다 위엔 수많은 고기잡이배들과 요트들이 떠 있었다.

 

우리는 바다 속으로 나무부교 위에 만든 레스토랑으로 가서 점심을 들었다.

창 밖으로 갈매기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하정아 씨는 파도를 보면서 기네스북에 오른 파도타기 최다 기록 보유자인

데일 웹스터 씨의 말을 들려주었다.

 

파도타기를 시작한 후 1만 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한 그는

왜 위험한 파도타기에 도전하느냐?”는 물음에,

 

파도마다 새로운 파도일 뿐만 아니라, 탈적마다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움을 접하기 때문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파도는 똑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경험자들에겐 매 번 다르고 새롭기 때문에 파도타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데일 웹스터 씨에게 호기심이 있어서

인터뷰 기사가 난 신문을 구해 읽게 되었다.

197593일 셔핑을 한 이래 200372027년간 파도타기를 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볼 때는 미래이고, 파도를 타는 것은 현재이며,

파도가 부셔져 가는 것을 볼 때는 과거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황홀한 파도타기라 할 지라도 순간을 지나면

형상과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왔고, 그래서 나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그의 말은 심오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이는 파도를 1만 일이나 탄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가 없는 말이다.

평생을 참선 수도한 고승의 말처럼 오묘하다.

 

파도타기에 대한 말이지만,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양적인 사유의 깊이와 깨달음의 꽃향기가 풍긴다.

한 가지 일에 세계적인 기록을 보유한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체험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갖게 되는가 보다.

 

파도타기 명수인 데일 웹스터 씨는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를 보면서

파도마다 빛깔과 음성과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멀리서 이는 파도를 보고 바다의 음성을 듣고,

파도의 가락과 힘을 안다고 한다.

 

파도마다 빛깔과 음성과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멀리서 오는 파도의 모습을 음성으로 듣고 저력을 간파하는 것이야말로

오랜 체험을 통한 경지에서만이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기후와 하늘의 음성과 기운을 알아차려야만

파도타기를 잘 할 수가 있지 않을까.

파도를 타는 것은 파도의 기세와 마음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파도가 되어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이 파도가 되고 생명이 파도가 되어 밀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삶도 인생도 파도가 아닌지 모른다.

미국 땅 태평양 연안 산타바바라에 간 것도 파도이기에 밀려가게 된 것이 아닐까.

 

내가 문단에 데뷔하여 수필을 쓰게 된 때가

데일 웹스터 씨가 파도타기를 한 해인 1975년이었다.

 

데일 웹스터 씨는 생명을 건 파도타기를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오랜 파도타기를 통해 물개,

돌고래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셔핑 타는 책을 갖고 난 후부터

이게 내 운명이구나.’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파도타기에 몰두하기 위해

바다 근처에 살면서 결혼도 미루고 일정한 직장도 갖지 않았다 

 

데일 웹스터 씨와 같은 세월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글을 썼지만 진전이 없는 것은 파도에 생명을 건

데일 웹스터 씨처럼 문학에 생명을 걸지 않고

집중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문학은 잔잔히 일다 마는 작은 파도에 불과할 뿐인가.

마산만의 파도를 보면서 데일 웹스터처럼 한 생애의 집중력을 모아

한 번이라도 산처럼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를 타보고 싶다.

 

하정아 씨가 차에서 햇볕양산, 조립식 벤치. 담요 등을 꺼내 바닷가 모래밭에 내 놓았다.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 때문에 이 곳 미술가들이 자신의 창작품을

바닷가에 진열해 놓고 파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비 때문에 모래밭이 텅 비어 있어 우리 일행의 독차지가 돼버렸다.

태평양으로 내리는 비, 아슴푸레한 수평선, 해조음, 모래밭을 배경으로

우리 일행 넷이 그 날 그 순간 산타바바라 해안의 한 풍경을 이루었다.

 

나는 잠시동안이지만 산타바바라와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파도타기 명수가 자신이 파도가 되는 것처럼

나도 광막한 태평양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명상이 된 산타바바라가 되고 싶었다.

 

파도가 되고 휴식이 되고 싶었다.

나는 모래밭에 펼쳐놓은 비닐 깔판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실제로 산타바바라와 함께 잠자는 것보다

이 도시를 더 잘 알 수 있는 일은 없으리라.

아름다운 풍경을 한 번으로 기억하고 마음 속에 담아놓을 수 없기에

눈을 감고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바다는 고적에 쌓여 있었다. 모래알들 곁에 누웠다.

파도가 이불이 돼 주었다.

해조음이 잠결에 아련히 들려왔다.

 

바람이 한 겹씩 몸을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빗방울이 한 방울씩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하정아, 성영라 씨와의 재회는 일 년 만이었다.

2002년 시월, 옥스나드 해변의 한 호텔에서 가진 12일의 수필캠프에

강사로 초빙되어 뜻밖의 호응을 얻었고,

나는 일년만에 또 문학캠프의 강사로 초청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일 년 전 하씨는 계간 퓨전수필의 편집장으로 나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서늘한 느낌을 주는 아침 9시경, 호텔 골프장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수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추위를 느끼는 듯한 나에게 느닷없이

이 스웨터를 입으시고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쑥색 스웨터를 입고 얘기를 나눈다면 훨씬 안온해질 듯 싶었다.

하씨의 제안에 따라 스웨터를 입고서 수필에 대한 얘기를 했다.

스웨터 때문에 몸이 훈훈했다.

 

어떻게 남자의 스웨터를 그 순간에 갖고 있다가 그런 제안을 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그 스웨터는 나의 것이 돼버리고 말았다.

꼭 맞으니 선물하겠다고 했다.

옥스나드 해변의 만남에 이어 일 년 만의 재회와 산타바바라의 초대는

쑥빛 스웨터의 감촉처럼 내 가슴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산타바바라의 파도를 탔다.

 

산타바바라의 바람은 야자수 잎을 빗질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30분쯤 눈을 감고서 나는 산타바바라가 되었다.

 

해변의 커피 숍으로 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태평양의 보석,

산타바바라의 비 오는 원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

파도타기의 명수 데일 스터 씨를 떠올리며

삶이 파도이며 꿈인 양 느껴졌다.

 

마산만의 파도는 잔잔하다.

나는 가끔 비 오는 바닷가에서 산타바바라를 떠올리며 삶과 파도를 생각해 보곤 한다.

 

한 번이라도 데일스터 씨처럼 파도를 타고 수평선으로 달려가고 싶다.

 

[수필가 / 정목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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