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에콜로지'의 사회적 풍경

사진마을 2017.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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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진전 '검은 산 하얀 길'

석탄 산업이 남긴 강원도 탄광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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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사진전 ‘검은 산 하얀 길2’이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14일까지. 김승현의 작업은 사진마을에 소개한 적이 있다. 논문으로 찍은 사진, 사진으로 쓴 논문(http://photovil.hani.co.kr/400432) 그 사진집의 제목은 <경동시장-그 사회적 공간>이었고 사람이 공간의 주체에서 밀려나고 있는 경동시장에 대한 고찰을 사진과 논문으로 결합한 역작이었다. 이번 전시 ‘검은 산 하얀 길2’는 훌쩍 뛰어 넘어 또 다른 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이 공간은 강원도 태백과 철암 근처에 있는 검은 산이다. 작가 김승현은 작가노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검은 산은 욕망의 산이며 자본주의의 추상공간이다”
  사진가들에게 시간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는 그 장소가 서울인지, 뉴욕인지 그 장소의 이름을 묻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서울과 뉴욕의 특징, 특질을 살필 것이다. 그런데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는 그 장소의 이름이 아니라 그 장소는 왜 생겼는지 혹은 변화되었는지를 묻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김승현의 ‘검은 산 하얀길2’는 후자의 질문에 해당하는 답을 제시하는 사진들이다.
  한국어로 풍경사진이라고 하면 흔히들 해 뜨고 새 날아가고 물안개 끼거나 단풍이 불타는 경치사진을 떠올린다. 풍경이란 낱말 앞에 뭔가를 덧붙이면 의미가 크게 확장된다. 정치적 풍경, 도시 풍경은 각각 다른 차원으로 해석된다. 정치적 풍경은 정세, 정치적 상황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공간이 되고 도시 풍경은 해 뜨고 바람 부는 전원이 아니라 빌딩이 솟아있고 고가도로가 휘어져 들어가는 회색 도시의 구체적 전경이 연상된다. 풍경 앞에 사회적이란 낱말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김승현의 사진전 ‘검은 산 하얀 길2’를 소개하기 위해 오늘 접목시킬 낱말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적 풍경사진’이다. 미국 사진에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걸쳐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 다른 양상의 사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셋을 꼽는다면 게리 위노그란드, 다이앤 아버스, 리 프리들랜더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사회적 풍경 사진은 길거리 사진과 비슷하게 보인다. 한편으로 전혀 다른 양상의 사회적 풍경사진이 있으니 예를 들자면 로버트 아담스의 황량한 자동차극장 사진을 떠올릴 수 있겠다. 사진에 사람이 들어있는지의 유무로 규정할 것은 아니나 ‘뉴 토포그래픽스-사람이 바꿔놓은 풍경에 대한 사진’들은 대체로 사람이 들어있지 않아서 앞서 말한 3인의 거리에서 찍는 ‘사회적 풍경’사진가들과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베허부부의 사진도 떠오르고 에드워드 루사의 사진도 떠오른다. 이 정도면 약간 감이 잡힐 것이다.
  사람이, 문명이, 기계가 허물어뜨린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자는 뜻의 사진들을 사회적 풍경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누가 딱히 규정할 일이 없다. 자연 풍경과 대비하여 사회적 풍경이라면 사람이 들어있거나 사람이 간섭한 풍경이 모두 사회적 풍경이다.
  에드워드 버틴스키는 하늘에서 본 대규모 풍경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찍는 사진의 내용이다. 버려진 탄광, 채석장, 유전 등을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찍었다. 산업사회가 남긴, 할퀸, 버린 지구 위의 흔적, 혹은 남기거나 할퀴거나 버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베허부부의 사진과 에드워드 루싸의 사진이 ‘의미는 있었으나 재미는 지독하게 없는’ 사진들이라면 에드워드 버틴 스키의 ‘다크 에콜로지’ 사진들은 ‘의미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변화의 재미도 추구한’ 사진들이다.
  한국 사진계에선 이상하게도(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뉴 토포그래픽스’라고 하면 뻣뻣하고 황량한 사진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객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져간다.
 중립성과 최소한의 개입은 더 큰 틀의 개념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근본 철학이지 뉴 토포그래픽스의 특성이 아니다.
 
   이런 풍토에서 김승현 작가가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고 몇 년째 찍고 있는 ‘검은 산 하얀 길’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매 사진마다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서 반가운 ‘뉴 토포그래픽스’다. 인간과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거칠게 접근했다 빠지고 남은 탄광의 검은 산과 그 언저리에 대한 사진을 보면 장황한 의미부여 없이도 작가의 고민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마다 세부묘사를 빼놓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관객과 독자가 사진을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장치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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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를 전문 소개한다. 사진을 포장하는 글이 아니라 작업을 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과 작업 과정의 심경을 전달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자는 뜻에서 썼다는 점에서 이 또한 반갑다.  


    검은 산 하얀 길    김승현


 검은 산은 욕망의 산이며 자본주의의 추상공간이다. 반면 하얀 길은 욕망에 시달리고 지쳐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이며 텅 빈 공간이다. 검은 산은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무더기이며, 하얀 길은 하늘을 쳐다보고 땅으로 돌아가는 텅 빈 길이다. 검은 산은 인간과 함께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근대사회의 핵심 장소로서 인간에게 욕망의 공간이 되었다. 시커먼 석탄 무더기는 근대사회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고,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인간 사회의 욕망을 상징하는 산은 거칠고 검으며 그 욕망을 추구하다가 지쳐서 돌아가고야 마는 길은 적막하고 하얗다.
 
 강원도 태백과 철암 근처 근방에 많이 흩어져 있는 검은 산. 겹겹이 쌓인 욕망처럼 검은 산은 하늘과 땅 사이에 첩첩이 있다. 그 욕망의 산에서 퇴출당해 빈손으로 돌아오는 하얀 죽음의 길은 욕망 사이에서 험하고 좁게 이어지고 있다. 검은 산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하얀 길은 욕망을 찾아 왔던 사람들을 다시 빈손으로 세상에 돌려보낸다. 
 
  검은 산 사이로 눈 덮인 하얀 길을 따라 고모부를 만나러 가던 젊은 시절. 기차를 타고 가던 그 시절의 검은 산 사이로 난 하얀 눈길은 동화처럼 빛났다. 그때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은 분주하고 현란한 저녁과 그 다음날 적막하고 쓸쓸한 아침과 함께 황홀함과 쓸쓸함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검은 강물이 흐르는 차창가의 풍경과 터널을 지나면 그 검은 강물 위에 내리던 하얀 눈. 밤이면 현란하던 황지(태백의 옛 이름)의 네온사인. 그리고 노래 부르면서 몰려다니던 사람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늦게까지 조용하던 아침. 젊은 시절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의 기억은 나이 들어서 다시 그 길을 찾아들게 하고 그때의 기억 속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을 눈앞에 남기고 싶게 한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욕망의 검은 산을 통해 투사된 자본주의 추상공간이다. 태백은 거대한 추상공간이었다. 자본주의 추상공간은 인간의 활동을 노동으로 추상화시키고, 임금으로 대치한다. 추상공간 속에서 인간들은 욕망을 관리당하고,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된다. 자본주의 검은 산이 높아질수록, 인간들은 더 낮은 곳에 위치하게 된다.
 
    이 사진들은 겨울이면 눈 속에서 더 검어지는 태백의 탄광을 찍은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죽음의 길로 내몰리게 되는 탄광촌의 노동을 잘 알면서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욕망의 검은 산을 찾아가는 인간들의 흔적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흔적이 각인된 공간은 사회적 공간이며 그 풍경은 ‘사회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사회적 공간에 서면 거기엔 욕망의 검은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없고 죽음으로 돌아간 하얀 길만 남았다. 그러한 삶의 장소는 사회적 풍경으로 지나간 시간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공간은 생산되고 다시 그 공간은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된다.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의 굴레바퀴 속에서 오늘도 욕망의 산은 새로운 욕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득문득 고향처럼 나를 오라고 불렀던 태백의 그 검은 산들을 찾아다녔던 몇 년의 겨울…….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갤러리 브레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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