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가 주례 선 사연

사진마을 2017. 03. 23
조회수 6315 추천수 0

미국 불교사찰<붓다나라>주지 선각스님,

스님 만들려고 눈독 들이던 당찬 아이로부터

느닷없이 결혼한다고 주례 부탁 받아 황당

출가도 수행이고 결혼도 수행이니...

 

 

hhs08.jpg » 23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의 서울국제불교박람회장에서 열린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과 신부가 행진을 하는 동안 주례 선각스님이 바라보고 있다.

 

23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개막되었다. 이날 오후 박람회장에선 불교전통혼례인 화혼식을 통해 신혼부부 한 쌍도 탄생했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아마두 마마두 상가레(26·고려대 경영학과 2년 재학중)씨와 한국인 신부 박꽃별(27·상담사)씨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다. 화혼식의 주례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애틀랜타의 불교사찰 <붓다나라>의 주지인 선각스님이 맡았는데 선각스님과 신부 박꽃별씨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결혼식 주례를 막 마친 선각스님과 인터뷰를 했다.

 

 선각스님은 1981년에 육문(현 전국비구니회 회장)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98년에 미국 워싱턴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정규수업이 아니라 따로 시간을 내어 동아리 마냥 현지의 학생들에게 참선을 가르쳤는데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자 더 이상 참선을 배울 수 없게 된 미국인들이 계속 배우고 싶다고 요청이 들어왔다. 스님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고 세인트루이스에 절을 세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각스님은 “그때 참선을 배우던 미국인 중에 한 명은 한국으로 와서 스님이 되었다. 송광사에서 혜총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경본스님이 그 사람이다.”라고 회상했다.

 

 이날의 신부인 박꽃별씨와의 관계에 대해 스님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처음 불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 2001년 무렵인데 한국에서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박꽃별씨의 어머니 백련화씨가 후원회 회원이었던 인연으로 그 집의 식구들과 가깝게 지냈다. 백씨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하나같이 똑똑하고 심지가 굳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했다. 선각스님은 이 세 딸을 유심히 보면서 어머니 백씨와 “딸들이 영민하니 셋 중에서 하나는 꼭 큰스님으로 만듭시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백씨의 큰 딸이 학업을 위해 캐나다로 가버려서 선각스님은 내심 둘째인 꽃별씨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 선각스님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2014년에 애틀랜타에도 불교사찰 <붓다나라>를 개원했고 1만 3천 평에 이르는 도량을 정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시애틀에서 영산홍을 주문해오는 등 15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스님은 “애틀랜타에 일이 많아서 한동안 한국에 올 수가 없었다. 이번이 3년 만에 온 것이다. 내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불법체류로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세상을 뜬 한인 한 명의 장례식을 세인트루이스 <붓다나라>에서 치르고 왔다. 돌아가신 분은 기독교인이었는데 무연고자다 보니 아무도 챙길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분의 종교를 뭐 따질 일이 있겠는가. 내가 나서서 모셨다.”라고 했다.


  3월 16일 3년 만에 한국에 온 선각스님은 백씨가 느닷없이 주례를 부탁하는 바람에 “참 묘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미국서 막 장례식을 치러주고 왔는데 한국에 오니 주례를 서라는구나” 게다가 결혼식의 신부는 출가시키려고 맘 먹고 있던 꽃별씨가 아닌가? 선각스님은 “머리를 깎아주려고 했는데 주례를 서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결혼하게 되면 스님이 되는 것은 물 건너가는 거 아닌가? 황당했다.”라고 헛웃음을 웃었다. 하지만 다시 정색을 하며 “출가도 수행이지만 혼인도 수행이다. 특히 결혼하게 된 신랑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이니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극복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이 혼인은 그래서 특히 더 수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각스님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주례사를 했다. 신랑의 부모는 이번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오질 못했지만 고국 말리에서 한국에 온 친구들이 여럿 있었으니 신랑과 신랑 친구를 위한 배려였다. 주례사를 통해 선각스님은 “오늘, 구리선녀와 선혜선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사람은 부처님께 꽃을 올려 세세생생 부부의 인연을 약속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모습을 거울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한쪽이 웃으면 거울의 다른 쪽이 웃고 한쪽이 울면 다른 쪽도 운다는 것을 명심하고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라”고 주문하고 “신랑이 될 아마두씨를 미리 만나서 결혼이 뭔지 물어보고 신부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람이라서’라고 답했고 신부가 될 꽃별씨에게 왜 신랑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신랑 아마두를 목표가 뚜렷하고 헌신적이고 긍정적이며 겸손하고 인내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서’라고 답하더라”며 “이렇게 잘 생긴 신랑이라면 나라도 결혼하겠다”라고 불쑥 농담을 던졌는데 식장이 웃음바다로 변했어야 하지만 주례이자 스님의 농담이니 만큼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은 몇 없었다. 


 신랑 아마두 마마두 상그레씨에게 불교에 대해 아는지 물어봤다. 아마두씨는 “솔직히 불교를 잘 모른다. 그러나 그저께 미리 주례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많이 배우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아마두씨는 또한 “지금은 학기 중이라 당장 신혼여행을 갈 수는 없다. 방학이 되면 말리로 가서 현지식으로 결혼식을 한 번 더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신랑집에 가서 인사하고 파티하고 또 신부집에 가서 인사하고 파티하고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파티를 한다. 또 말리에선 부모님이 결혼하게 된 신부의 발을 씻어주는 풍습이 있다. 우리 꽃별씨도 발을 씻어주게 될 것이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혼례가 끝나고 선각스님은 신부 어머니 백씨와 함께 옛날이야기를 했다. “꽃별이가 어릴 때부터 너는 글로벌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하게 놀아라”라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 신랑감을 데리고 와서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라면서 둘이 박장대소했다.

 

hhs02.JPG » 신부 박꽃별씨가 주례인 선각스님에게 불전에 바칠 꽃 두송이를 전하고 있다.

hhs03.JPG » 이날 결혼식이 열리기전에 같은 장소에서 정명스님의 개인전이 열렸고 정명스님이 이끄는 <연화세계> 문하생들이 스님이 만든 지화플라워쇼에 출연했다. 지화플라워쇼였지만 마치 화혼식 축하공연의 분위기였다.

hhs04.JPG » 지화플라워쇼hhs05.JPG » 태평무 공연

hhs07.JPG » 주례 선각스님이 신랑 아마두에게 염주를 건네고 있다. 불교전통 혼례인 화혼식에서는 혼인서약에 앞서 염주교환의 순서가 있다. 신부가 신랑에게 신랑이 신부에게 염주를 채워주는 것이다. 염주를 교환한 뒤에 결혼반지도 교환한다.



  화혼식의 유래
 불교 화혼식의 유래는 부처님 전생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그러니까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나기 전의 생애에 선혜라는 이름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을 때 이야기다. 연등부처님께 꽃을 공양하기 위해 구리선녀로부터 꽃을 구했다. 구리선녀는 선혜선자에게 공양할 꽃 다섯 송이를 나눠주고 자신의 몫으로 공양할 것을 부탁하며 두 송이를 따로 주었으며 그 대신 현생에서는 물론이면 세세생생 자신과 부부가 되어줄 것을 청했다. 선혜선자는 함께 부처가 되어 보살행을 할 것을 조건으로 구리선녀의 요청을 수락했다.
 선혜선자와 구리선녀는 다음 생에 싯다르타 태자와 야소다라 공주로 태어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야소다라 공주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을 꼭 쥐고 펴지 않았다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와 혼인한 뒤에 주먹이 펴졌는데 손바닥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발견되어 이들의 전생 인연을 증명했다고 경전은 전한다.
 
 칠경화헌연등불
 석일발원금부부
 막한원앙금재별
 필경정각영산회
 
 (일곱 송이 꽃을 연등부처님께 드렸더니 옛날에 발원한 것이 금세에 부부가 됨이로다. 원앙이 두 번 이별함을 한탄하지 말라. 필경 영산회상에 정각을 이루리라)
 
 이런 전생의 이야기에서 기원하여 불교에선 결혼식을 ‘화혼식’이라 부르며 신부가 신랑에게 전달해 불전에 바치는 일곱 송이 꽃을 칠경화라 부르고 있다. 이날 화혼식에서도 신랑 아마두가 다섯 송이를, 신부 꽃별씨가 두 송이를 불전에 바치는 헌화의식을 가졌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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