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르지 않고 콕콕, 그러나 정답은 없다

곽윤섭 2011. 04. 11
조회수 8773 추천수 0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노트’


 연습문제도 철학·견해도 함께 섞여있지만 쉽게
 “생각과 논쟁 불러오는 발판 제공” 겸허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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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퍼키스가 쓰고 박태희가 옮긴 명저 ‘사진강의노트’가 절판되었다가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지난번 책과 내용은 완전히 같다. 필자도 바뀌지 않았고 옮긴이도 그대로다. 출판사가 바뀌었고 책 표지가 바뀌었을 뿐이다.
 전업사진가든 생활사진가든 가릴 것 없이 이미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이 책을 읽었으나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있다. 사진 인구수를 생각하면 ‘사진강의노트’는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종이가 가벼운 탓인지 이번 책은 더욱 편하게 보인다. 아무리 많이 소개해도 지나칠 일이 없으니 사진강의노트를 다시 소개한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아주 인색한 사진가

 

 필립 퍼키스는 앤셀 아담스, 도로시아 랭 등 당대의 대가들에게 사진을 배웠고 1962년부터 사진강의를 시작했다. 2008년에 사진집 ‘인간의 슬픔’을 출간했고 그 사진의 깊이가 장난이 아닌 것으로 봐서 분명히 사진가다. 50여 년 사진인생에 비한다면 사진전을 그다지 많이 하지도 않았고 사진집은 한두 권밖에 내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사진에 대해 아주 인색한 사진가다.
 그런 이력과 달리 사진강의는 꽤 했다. 여러 사진워크숍을 열었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사진학과에서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며 뉴욕 대학, 스쿨 오브 비쥬얼아트 대학원에서 사진을 강의하고 있다. 2001년에 ‘사진강의노트(Teaching Photography) 초판이 처음 나왔고 한국어 번역본만 1만 권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연습문제도 들어있고 사진에 대한 그의 철학과 견해도 같이 섞여있다. 책을 따라 읽다 보면 퍼키스 선생이 사진을 강의하면서 만든 강의록이었다는 사실을 쉬 깨닫게 된다. 첫 번째 연습 ‘바라보기’를 보면 저자인 퍼키스 선생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연습 1. 바라보기 (Looking)
 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본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곤 끝이다. 연습을 하라는 말은 있고 그 다음엔 어찌하라는 이야긴 없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면 연습의 목적이 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 든 연습과 숙제는 정답을 따로 적어두지 않았다. 원래 정답 같은 것은 없으니 당연하다. 행여나 사진이란 것을 가르치면서 질문과 답변을 바로 전달하는 스승이 있다면 참 무서운 일이다. 다만 실제 뉴욕의 사진강의에선 이런 연습문제를 접한 학동들이 선생에게 질문을 할 순 있었을 것이고 질문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들을 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엽적인 내용까지 이 책에 다 담을 순 없다. 책을 끝까지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퍼키스 선생은 사진을 오래 강의했고 통찰력이 높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현학적이진 않다. 수잔 손탁의 ‘사진에 관하여’는 사진을 강의하다가 쓴 책이 아니니 어려웠던 모양인데 역시 사람이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인 모양이다. 손탁은 사진강의를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했다면 인기없는 강사가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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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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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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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퍼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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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퍼키스

 


 철학용어 들먹이지 않고서도 철학으로 이끌어
 
 ‘사진강의노트’의 강점은 고명한 철학이 들어있다는데 있지 않고 쉽게 읽힐 수 있다는데 있다. 같은 내용을 쉽게 말하는 것은 크게 자랑할 만한 능력이다. 쉽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하다. 쉽다고 해서 슬슬 건너가도 좋은 내용이 아니란 점이 또 한 번 놀랍다. 뜬 구름을 잡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책이 아니다. 책의 목차를 보면 구체적이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는 방법’,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의 명암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라는 식으로 필요한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짚어주고 있다. 철학용어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철학으로 이끌어준다.
 겸허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서문 ‘책을 펴내며’를 읽으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퍼키스 선생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것 같다. 길지 않으니 직접 소개한다.


 “사진을 가르쳐 온 지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수많은 강의와 사진 프로젝트, 비평을 해온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는 뜻에서 사진촬영과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한두 편씩 글이 쌓여 마침내 작은 책이 되었다. 사진을 가르친다는 것은 외국어나 운전을 가르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학생들이 구석구석 깊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과연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는가?)
 사진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장 내 말 한 마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해적에게 잡혀 눈이 가려진 채, 선상 끄트머리로 걸어가며 당장에라도 ‘멈춰’ 하는 말이 떨어지길 애원하는 선원의 심정이랄까.
 이 책의 내용은 어떤 입장을 옹호하거나 사진 개념과 기술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생각과 논쟁을 불러오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 생각과 경험이 사진 초보자들과 이제 막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한 선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책을 몇 권 쓴 적이 있다. 어떤 책을 낼 때는 본문을 다 써놓고 마지막에 서문을 못 써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제 퍼키스 선생의 서문을 보니 ‘서문은 이렇게 쓰는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되었다. 짧고 명료하다. 기자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다만 사진기자를 시작한 덕분에 사진공부를 나중에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2001년에 쓴 퍼키스 선생의 사진강의노트를 나중에 발견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때 벌써 문화센터에서 사진강의를 시작한 지 4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진작 이 책을 발견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아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만약 순서상 내가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먼저 읽고 사진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면 어떤 식이든 퍼키스 선생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나 나름의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강의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사진강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든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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